메이드 카페란 하녀(maid) 복장을 한 여성들이 ‘서빙(serving)’을 하는 카페.
코스프레 카페는 메이드복 외에 마법사복 등 다양한 복장 차림의 여성이 등장하는 곳이다. 코스프레란 영어의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가장놀이)’에서 따온 말.
8일 오후 8시경 아키하바라의 거리는 쇼핑객이 빠져나가는 분위기인데도 여전히 흥청거리고 있었다. 대형 매장이 즐비한 주오(中央) 대로를 5분 정도 걷자 분홍색 메이드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이 가게 선전 쪽지를 건넸다.
‘메이드 카페 핑크 하트-주인님과 아가씨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6층에 있는 핑크 하트에 가려면 4명만 타도 옆 사람과 어깨를 비벼야 하는 비좁은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쌍의 연인이 6층에서 같이 내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분홍색 메이드복을 입은 앳된 종업원들이 차를 나르거나, 테이블에서 손님과 게임을 하고 있었다. 메이드들이 사용하는 일본어는 평소 듣기 어려운 극존칭으로 마치 고객을 지체 높은 귀족을 대하는 듯했다. 반말에 익숙한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익히자면 애를 먹었을 듯하다.
핑크 하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검은 고양이’를 찾았을 때는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웠다. 그래도 머리에 검은 고양이 장식을 한 앳된 소녀차림의 종업원들이 “오서 돌아 오시와요, 주인님”하며 반갑게 맞았다.
마침 손님이 없었던 덕분에 관리인인 나쓰메 오사무 씨를 취재할 수 있었다.
이곳이 문을 연 것은 지난해 11월 중순. 두 달이 안됐지만 하루 평균 100∼150명이 찾는다고 한다.
그는 “손님은 남녀 구분없이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다”며 “최근에는 TV를 보고 지방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고 말했다.
테이블에서 메이드와 함께 카드게임을 즐기는 데 드는 비용은 1인당 1500엔. 하지만 인원이 많아질수록 단가는 떨어진다.
아키하바라에 있는 메이드 카페나 코스프레 카페는 30곳 안팎. 일부는 밀폐된 방에서 메이드와 단둘이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가끔 ‘차 빨리 나르기’ 등 이색 경기로 꾸며진 메이드 체육대회나 메이드 사진찍기 같은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메이드 카페는 오사카(大阪) 등 다른 도시로도 확산되는 중이다. 한국인의 정서에는 얄팍한 상술로 비치지만 일본에서는 나름대로 뿌리가 깊은 문화 현상이다.
메이드 카페가 대표하는 키워드 ‘모에(萌え)’를 모르고서 현재 일본의 문화코드를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모에의 원형인 ‘모에루(萌える)’의 사전적인 의미는 싹튼다는 뜻. 아키하바라에서는 만화 애니메이션 비디오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특히 미소녀에 대한 호감이나 사랑을 ‘모에’라고 부른다. 원래 오타쿠(마니아)들의 속어였지만 아키하바라 문화의 확산과 함께 지금은 대중매체에서도 일상적으로 쓰이게 됐다. 지난해 일본의 10대 유행어에 ‘모에’가 뽑혔을 정도다.
오타쿠들의 미소녀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놀라울 정도다. 직장에서 번 돈을 전부 캐릭터용품을 사는 데 털어 넣는가 하면 사회생활을 포기한 채 집과 아키하바라를 오가며 만화 속 세계에 몰입해 사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메이드 카페와 코스프레 카페는 오타쿠의 공상과 현실 세계를 이어주는 길목에 위치한 휴게소인 셈.
메이드 카페가 아키하바라에서 싹튼 데는 이유가 있다. 아키하바라는 가전제품을 위주로 번창했으나 1980년대 교외 지역에 대형 양판점이 등장하면서 타격을 받았다.
이때 아키하바라를 위기에서 건져 준 것이 1990년대 PC와 윈도95의 보급이다. 이어 PC와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의 결합이 가속화하면서 가상 캐릭터들이 아키하바라의 주인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가상 캐릭터들이 현실 세계로 나온 메이드 카페는 이제 오타쿠의 전유물에서 시민과 관광객들의 휴식 공간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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