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1일 저녁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릴을 거쳐 벨기에까지 달리는 유로스타(Eurostar) 객차 안. 일본인 사업가 사가미(42) 씨는 “릴에서 하룻밤 묵은 후 내일 아침 바로 파리로 가야 한다”며 “프랑스 동북부,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를 오가면서 사업을 하는데 릴은 도착과 출발이 이뤄지는 근거지”라고 말했다.
프랑스 동북부 노르파드칼레 주에 위치한 릴은 프랑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서부 지역까지 아우르는 철도 교통의 요지. 영국과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서 오는 승객들은 릴을 거쳐 프랑스 전역으로 흩어진다. 릴에서 런던까지는 1시간 40분, 파리까지는 1시간, 브뤼셀 38분, 암스테르담이 2시간 거리다. 유로스타, 테제베(TGV) 등 매일 릴에 정차하는 기차는 100여 편에 이른다.
1994년 도버 해협에 터널이 뚫리고 프랑스의 TGV 등 고속전철로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국제선 유로스타가 개통된 이래 릴은 유럽의 교통 허브로 새로운 융성기를 맞고 있다.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 워털루 역을 떠나 릴 유럽 역을 거쳐 벨기에 브뤼셀의 미디 역에 닿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2시간 20분. 유로스타 개통 이후 런던과 파리 주행시간은 2시간 35분이다. 2007년이면 이마저도 20분이 단축된다. 프랑스나 벨기에만큼 고속으로 철도를 움직일 수 없었던 영국 구간의 철도 공사가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유로스타는 환승이 편리하고 운행시간이 짧아 사업 여행이 목적인 유럽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하지만 예약을 하지 않으면 릴∼런던 편도(영국 애슈퍼드 역에서 1회 정차)의 경우 성인(25세 이상)은 160유로(약 19만 원·1주일 전 예약 시 70유로)나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출장을 갈 경우 비행기 이용자가 더 많다. 그렇지 않아도 유로스타에 손님을 빼앗긴 항공사들은 철도회사가 따를 수 없는 저렴한 운임을 제시하며 가격 경쟁을 펼쳐왔다. 버진항공 등은 한때 철도 운임의 10분의 1 가격으로 동일 구간의 항공료를 정하기도 했던 것.
그러나 릴은 지상에 승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대규모 쇼핑몰을 세움으로써 항공사들의 가격 공세를 돌파했다.
릴=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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