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미래로 미래로]<6>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 입력 2006년 1월 27일 0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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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스트처치 시의 여유로운 도심. 시 당국은 “많은 시민이 도심을 걸어다닐수록 도심의 안전도가 높아진다”는 판단에 따라 도심에 시민의 발걸음을 유인할 작은 상점, 노점상들을 유치하기 위한 축제를 기획한다. 사진 서현 교수
크라이스트처치 시의 여유로운 도심. 시 당국은 “많은 시민이 도심을 걸어다닐수록 도심의 안전도가 높아진다”는 판단에 따라 도심에 시민의 발걸음을 유인할 작은 상점, 노점상들을 유치하기 위한 축제를 기획한다. 사진 서현 교수
《90세 노인과 9세 어린이가 혼자서도 돌아다닐 수 있는 도시. 이것은 뉴질랜드 남섬의 최대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가 목표로 하는 ‘90계획’의 한 부분이다. 크라이스트처치의 도심 상점에는 ‘모두가 서로를 지켜 준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조금이라도 그늘지고 한적한 도로에는 감시카메라 작동 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 담장을 없애 안전을 지키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의 ‘어린이에게 친근한 도시(Child Friendly City)’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도시 중 하나다.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은 1989년 비키 벅 씨가 뉴질랜드 최초의 여성시장에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벅 시장은 어린이들이 느끼는 안전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어린이 대표’ 제도를 운영하고 어린이 중심 도시를 만들기 위해 방대한 조사를 시행했다. 현 시장에까지 이어지는 ‘평화로운 도시(Peace City)’ 사업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도시에서의 안전은 크게 범죄 위협을 막아 주는 치안(security), 교통사고를 포함한 물리적 위협으로부터의 안전(safety)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크라이스트처치 시와 시민들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포함시킨다. 실제의 위험보다 더 시민을 위협하는 것은 ‘도시가 위험하다’는 인식이라는 것이다.

안전한 도시 조성의 강력한 힘이 되는 것이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다. 시 정부가 앞장서고 시민들이 떠밀려 다니며 불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구도가 크라이스트처치에 형성되어 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어디까지가 시 정부고 어디부터가 민간단체인지가 모호할 정도로 많은 시민의 모임이 엮여 있고 이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도시를 지탱한다.

‘90계획’도 이런 맥락에서 추진된다. 모든 시민이 범죄를 예방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크라이스트처치 시민들은 담장을 높이 쌓는 것이 아니라 담장을 없애는 것이 범죄를 막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가로등도 차도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인도의 구석까지 비출 수 있도록 별도로 마련됐다. 도시 구석구석에서 이웃의 시선으로부터 감춰질 수 있는 곳을 없애는 것이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길이라고 크라이스트처치 시민들은 생각한다.

시내 곳곳 감시카메라
크라이스트처치 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범죄 예방 카메라 작동 구역 표지판. 사진 서현 교수

○ 유학생 90% 이상이 아시아계

도심의 안전을 지키는 방안에 대해서도 크라이스트처치가 내놓은 원칙은 같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크라이스트처치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90%를 넘지만 야간에 도심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0%를 넘지 않았다.

시가 내놓은 방안은 도심 활성화였다. 항상 많은 사람이 도심에서 돌아다녀야 범죄가 예방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심에는 소매점이 있어야 하고 심지어 노점도 범죄 예방에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 당국은 세금 감면의 유인책을 쓰지는 않았다. 대신 시는 자본력이 약한 소매상을 위해 공동광고를 해 주고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다양한 축제를 기획한다.

안전한 도시에 대한 크라이스트처치 시의 노력은 의외의 보상을 가져왔다. 아시아의 청소년 유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20여 분만 걸으면 도심의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서울의 광화문에서 시청 정도의 거리를 걷는 동안 중국 한국 일본 음식점을 각각 서너 곳은 마주치게 된다.

이들 상점의 주요 고객은 청소년 유학생들. 영어를 사용하는 도시이면서 자연환경이 뛰어나 안전한 도시라는 장점이 청소년들을 혼자 유학 보내는 아시아 부모들의 마음을 끌어당긴 것이다.

인구 30만 명인 크라이스트처치에 2003년 외국인 유학생은 1만5000여 명이었다. 그중 1만4000여 명이 중국 일본 한국에서 온 학생이었다. 이들이 크라이스트처치에 뿌린 돈은 1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크라이스트처치는 2025년까지 유학생이 현재의 4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크라이스트처치 시의 국제협력실장인 수 맥팔레인 씨는 “외국 유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중요한 것은 ‘시민에게 안전한 도시’다. 경제적인 보상은 그 결과일 뿐이다.

크라이스트처치=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 공원內범죄, 꿈도 꾸지 마세요

‘안전한 도시’를 추구하는 크라이스트처치 시의 노력이 얼마나 세심한지는 공원 한 곳만 들러도 느낄 수 있다. 휴식, 산책, 조경 등의 공간으로만 생각하던 공원의 의미를 ‘범죄 예방의 장소’로 확대한 것.

시 중심에서 약간 서북쪽에 있는 해글리 공원은 면적 55만여 평의 방대한 규모. 수풀이 울창하지만 밤에도 안심하고 어느 곳이든 다닐 수 있다.

공원은 전체적으로 중앙에 대형 잔디밭이 있고 그 주변을 따라 나무가 심긴 형태.

나무는 대부분 성인 남자의 눈높이보다 높은 곳부터 가지가 뻗어 있다. 나무 때문에 시야가 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가지치기를 한 것이다. 수풀이 우거진 곳을 따라 산책로를 낼 경우 산책로와 수풀 사이에 시내를 만들어 차단막을 형성했다. 수풀에서 갑작스레 치한 등이 튀어나오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산책로를 따라 배치된 의자도 얼굴이 길 쪽을 향하게 앉을 수 있도록 했으며 주로 공원 전체와 주변 경관이 훤히 보이는 방향으로 설치됐다. 인적이 드문 소로(小路)는 가급적 만들지 않고 주 산책로와 몇 개의 간선 산책로(escape routes)가 연결되는 형태로 이뤄졌다.

크라이스트처치 시는 도시 설계를 통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환경 디자인을 통한 범죄예방(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의 원칙을 마련해 놓고 있다. 시청 도시 디자인팀의 해나 레스웨이트 씨는 “공원 내 시설물의 위치, 시야 확보, 산책로 조성에 조금만 신경을 써도 공원 내에서 일어나는 범죄가 상당히 줄어든다”고 말했다.


크라이스트처치=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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