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가론 강변 캐드샤트롱에‘카파 포르마시옹(CAFA Formations)’이라는 사립 와인학교가 있다.
정확히는 소믈리에 양성학교다.
한국인의 경우 재작년 졸업생 2명, 지난해 졸업생 1명이 처음으로 프랑스 국가공인 MC 소믈리에(Mention Compl´ementaire de Sommellerie) 시험에 합격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이 시험에는 프랑스에서 매년 400명 정도가 합격하는데 그중 외국인은 3%를 밑돈다.
능숙한 프랑스어로 구두시험을 본 후 6시간에 걸쳐 필기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외국인으로서는 어려운 시험이다.》
18일 오전 9시 학생들은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교외에서 가장 가까운 와인 산지인 그라브 지역 페사크 레오냥의 샤토 오 바이이로 향했다. 그랑크뤼급(최고급) 와인을 만드는 샤토(양조장)다. 이곳 양조책임자 가브리엘 비아라르 씨는 학생들과 학습 대부(代父)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해 9월 입학한 학생들은 프랑스 혁명력으로 포도월(葡萄月)이 시작되는 그달 하순부터 매달 한 번 샤토에 들러 포도 수확부터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본다. 5번째 방문인 이날은 수티라주(soutirage·와인 옮겨 담기)를 견학했다. 수티라주는 숙성 초기 단계에서 바리크라는 큰 참나무통(본격 숙성용 참나무통보다 크다)에 담긴 와인을 다른 바리크에 옮겨 담으면서 바닥에 침전된 불순물을 걸러 내는 과정이다. 이 샤토에서는 3개월마다 한 번씩 모두 5번 정도를 거른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수티라주가 저런 것이구나.’ 이렇듯 양조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와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7일 수업에는 3종류 와인의 ‘수직(垂直) 시음’이 있었다. 수직 시음은 서로 다른 수확연도의 와인을 비교하는 것이다. 상표는 떼어진 상태. 배우는 학생임을 감안해 힌트로 1997년, 2001년, 2003년이라는 수확연도가 주어졌다. 어느 와인이 어느 해에 해당하는지만 맞히면 된다.
적포도주는 처음 보랏빛을 띤 자주색에서 점점 체리색으로 변하고 이후 구릿빛이 나면서 오렌지색으로 바뀐다. 대부분의 학생이 1997년산을 맞히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절반 정도는 2001년산과 2003년산을 바꿔 골랐다. 2003년산에서 2001년산보다 오렌지색이 더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확연도의 특징에 따라 예상과 달라지는 경우는 늘 있다. 이 때문에 시음은 어려운 것이고 그만큼 흥미롭다. 손님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는 소믈리에가 되려면 많은 샤토를 방문하고 많은 와인을 마셔 봐야 한다.
학교는 한 달 중 2주는 수업을 하고 2주는 쉰다. 수업이 없는 동안 학생들은 종종 그룹을 지어 샤토를 방문한다. 이날도 학생들은 수업이 없는 다음 주에 방문할 샤토를 예약하고 차량을 빌리는 문제를 의논했다.
17일 방과 후 학생 2명과 함께 번화가인 캥콩스 광장 인근의 ‘랑트르코트’라는 식당에 갔다. 오후 7시 반부터 문을 연다는 이 식당에는 개장 시간 전부터 손님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곳의 메뉴는 단 하나. 프랑스인이면 대부분 좋아하는 보르도식 쇠고기 스테이크인 ‘앙트르코트(entrecote)’다. 주로 ‘덜 익혀’ 먹는 앙트르코트에는 핏빛이 선연했다. 와인을 고를 필요는 없었다. 식당은 앙트르코트에 가장 어울리는 집 와인(vin de maison)만을 제공한다.
보르도 적포도주의 주요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이 쇠고기와 어울린다는 게 바로 이런 맛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독일 라인팔츠에서 서민풍의 헬무트 콜 총리가 좋아했다는 자우마겐(Saumagen)에 리슬링 품종의 백포도주를 마시며 느꼈던 궁합을 다시 한번 체험한 순간이었다. 음식 없이 와인 없다. 소믈리에가 와인의 전문가인 것은 음식과 궁합을 잘 맞춰 손님에게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학생들은 외식 한 끼에도 늘 와인을 곁들이며 그 궁합을 공부한다.
학교는 9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 1년 과정이다. 수업료 자체는 약 4000유로(약 500만 원)이지만 강의가 프랑스어로 진행되므로 외국인의 경우 어학연수 1년을 고려한 2년 정도의 생활비가 필요하다. 자유 시간을 활용한 보충학습에도 비용이 든다.
레스토랑 경력이 3년 이상인 학생의 경우 이 과정을 마치면 프랑스 국가공인 MC 소믈리에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
보르도=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 프랑크 쇼세 ‘카파’ 교장
카파(CAFA)의 프랑크 쇼세(사진) 교장은 보르도 2대학 양조학과를 졸업했다. 와인에 대한 최고 교육기관은 대학 양조학과다. 보르도 2대학 외에 부르고뉴 대학, 몽펠리에 2대학 등이 유명하다. 양조학은 자연과학의 응용분과로 생물학 화학 토양학 기후학 등에 대한 광범위한 이론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쇼세 교장은 “양조학은 소믈리에가 되는 것보다는 훨씬 광범위한 분야”라고 말했다.
―CAFA와 같은 사립 교육기관과 대학 양조학과의 부설과정인 DUAD, 전문대학 수준인 CFPPA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CAFA와 같은 사립 교육기관은 와인을 레스토랑에서 서비스하는 직업인을 키우는 곳입니다. 프랑스에서 소믈리에는 와인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와인을 서빙하는 사람을 말하거든요. 이에 비해 DUAD는 자연과학적 지식을 갖고 와인 맛의 화학적 성분, 심리적 요인까지 분석합니다. DUAD를 졸업하면 물론 훌륭한 소믈리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업인으로서의 소믈리에는 맛의 차이에 예민하면 되는 것이지 이런 과학적 분석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DUAD의 경우 외국인 입학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보르도 2대학 부설 DUAD 과정은 한국인 1명, 일본인 3명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CFPPA는 전문대학 수준의 일종의 양조학과입니다.”
―한국인 중에도 소믈리에를 넘어 와인 양조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은 천연의 와인산지는 아닙니다. 다만 한국인도 미국 이탈리아 등 와인 산지에 살 수 있는 것이고 농장을 소유하고 포도재배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과거에 CAFA에서 배우고 나간 한 일본인은 DUAD를 거쳐 아버지가 와인중개상인 노르웨이 여자와 결혼한 뒤 양조업으로 진출했습니다. 한국에도 양조에까지 깊은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보르도=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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