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 내용은 스케일이나 비전 제시 측면에서 지난해 연설에 미치지 못했다고 미 언론들은 평가했다.
사회보장제도 개혁 같은 야심만만한 제안도 없고, 그동안 자신이 내놨던 정책들을 재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인색한 평가도 나왔다.
이라크전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복구 등으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 그리고 지지도 하락이라는 불리한 현실 여건과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설의 절반 이상을 에너지의 해외 의존 감축, 수학과 과학 교육 강화를 통한 대외 경쟁력 제고, 의료비 감소, 허리케인 피해 복구 같은 국내 문제에 할애했다. 백악관 관계자들은 이날 연설이 국내용이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에너지 정책=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석유에 중독(addicted)돼 있다”면서 “석유는 종종 세계의 불안정한 지역에서 수입된다. 중독을 끊는 최선의 방법은 기술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2025년까지 미국의 중동 석유 의존을 75% 이상 줄일 것을 제안했다. 부시 가문과 텍사스 석유산업의 정치적, 개인적 관계를 고려할 때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부시 대통령은 ‘석유 중독’의 해결책으로 더 깨끗하고 값싼 에너지 개발을 위해 에너지부의 클린 에너지 연구비를 22%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2001년 이후 대체 에너지 개발을 위해 약 100억 달러를 투자해 왔다. 앞으로 대체 에너지 개발, 태양열 풍력 원자력 발전과 함께 수소나 에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자동차 개발 등에 과감한 투자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력 강화=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인간의 재능과 창의성 분야에서 계속 앞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 전반의 혁신을 고무하고 수학과 과학 분야의 확고한 기반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미국의 경쟁력 구상’을 제안했다.
이 구상은 앞으로 10년 동안 자연과학 연구를 2배로 늘리고, 수학과 과학 과목의 고급과정(AP)을 담당할 7만 명의 고교 교사를 양성하며, 3만 명의 수학 과학 전문가가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역동적인 세계 경제 속에서 중국과 인도 같은 새로운 경쟁자가 생겨나고 있는 만큼 자족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함으로써 경쟁력 강화가 특히 중국과 인도를 의식한 것임을 인정했다.
이와 함께 부시 대통령은 감세를 통한 경제 성장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의료비 감소=부시 대통령은 의료비 통제를 위해 의료저축 계좌 확대와 의료사고 소송을 제한할 수 있는 법률 제정을 의회에 요청했다.
2억9000만 명의 미국인 가운데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약 4500만∼4800만 명이나 돼 미국의 의료비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돼 왔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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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
대체로 매년 1월 말 미국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회의에 참석해 발표하는 국정보고로서 새로운 입법 제안의 기회로 활용된다. 입헌군주국에서 왕이 의회에 내리는 칙유(Speech from the Throne)를 본뜬 것으로 미국 헌법에 규정돼 있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1790년 처음 시작했으나 토머스 제퍼슨 제3대 대통령이 “너무 제왕적이다”며 서면 제출로 대신했다. 1913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다시 국정연설을 부활시켰고 20세기 후반 대통령들은 서면 제출로 대신하기도 했다. 1966년부터 국정연설 직후 야당의 반박연설이 방송됐다. 올해엔 민주당의 팀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가 “잘못된 선택이자 나쁜 국가관리 정책”이라며 국정연설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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