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는 브로드웨이 공연으로 이름난 ‘극장의 거리(Theater District)’가 잘 알려져 있지만 패션의 숨은 중심지로 통하는 ‘패션의 거리(Garment District)’도 있다.
이 거리는 맨해튼의 브라이언 파크를 끼고 동서로 6번 애버뉴에서 9번 애버뉴까지, 남북으로는 36번가에서 40번가에 이르는 곳을 가리킨다. 패션 회사들과 단추나 리본을 파는 부자재 가게, 원단 가게들이 몰려 있다.
이곳을 숨은 중심지라고 하는 이유는 사실상 뉴욕 패션의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패션 중심지라고 하면 보통 화려한 5번 애버뉴나 ‘영 패션’의 선두인 소호를 떠올리지만 맨해튼의 몇몇 거리가 전통적으로 뉴욕 패션을 이끌어 온 게 사실이다.
패션은 뉴욕의 일부다. 뉴욕은 매년 2월과 9월에 패션의 도시다운 이벤트로 분주하다. 브라이언 파크에서 10일 폐막한 ‘2006년 가을 패션 위크’에서는 마크 제이콥스, 랠프 로런, 캘빈 클라인, 랄프 루치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화려한 패션의 세계를 보여줬다. 10일 오후 7시에는 중국 진시황 시대에서 영감을 얻은 랄프 루치의 쇼가 관객을 사로잡았다.
패션의 거리 중 7번 애버뉴 쪽에는 세계 각국에서 수입한 고급 원단을 파는 상점 ‘B&J’ ‘Mood’ 등과 아시아 지역에서 수입한 저렴한 옷감을 파는 원단 가게들이 있다. 브로드웨이와 6번 애버뉴 사이에는 단추 비즈 가죽 리본 등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 바로 이런 곳이 뉴욕 패션계를 뛰게 하는 ‘심장’이다. 원단 가게와 부자재 가게 주위의 건물에는 도나 캐런, 랠프 로런 등 디자이너 회사들과 프로덕션들이 빼곡하다. 수백 명의 직원이 있는 큰 회사들과 사무실 하나밖에 없는 작은 회사들이 동거하고 있다.
이곳은 패션에 관심 있는 뉴요커들이 꼭 찾아오는 지역이다. 원단 가게에서 만난 사라 위트먼(45) 씨는 “패션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옷이나 인테리어 소품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 이곳을 자주 찾는다”며 “이젠 어느 곳이 싸고 좋은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의 거리는 뉴욕의 특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유명 디자이너는 물론 ‘파슨스 패션 스쿨’ ‘FIT’에서 미래의 디자이너를 꿈꾸며 공부하는 학생들,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스페인계와 중국계, 옷감을 나르는 흑인들을 볼 수 있다.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꿈과 개성들이 동시에 어울리는 것이다.
다양성은 식당가에서도 확인된다. 20달러에 이르는 유기농 점심을 파는 고급 식당부터 단돈 3달러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이른바 ‘칩 차이니즈(Cheap Chinese)’라고 불리는 음식점이 공존한다. 한 끼에 3달러부터 20달러 사이의 간격만큼이나 다양한 삶들이 섞여 있다.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패션의 거리를 드러내 주는 이색 표지도 흥미롭다. 39번가에는 고개를 숙인 채 재봉틀을 돌리는 동상과 패션 센터 앞의 큰 단추에 바늘이 꽂힌 상이 있다.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할리우드와 비슷한 ‘명예의 거리(Walk of Fame)’ 보도에서 캘빈 클라인, 제프리 빈, 빌 블레스 등 뉴욕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의 이름과 이들에 관한 설명을 발견할 수 있다.
7번 애버뉴와 39번가 사이에는 거리의 미관을 바꾸는 등 패션 중심지로서 뉴욕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세운 패션 센터가 있다. 이곳은 다양한 문화행사를 유치해 거리 자체를 관광 상품화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어두운 부분도 있다. 한 경찰관은 “많이 나아졌으나 아직도 8번, 9번 애버뉴 쪽에 노숙자들이 많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패션 센터와 여러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새나 통신원 패션디자이너 saena.park@gm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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