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으로 분주한 파리의 다른 지역과 달리 시내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조용한 동네’로 분류됐던 이곳이 최근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루이뷔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미국인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단독 매장을 이곳에 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미국인 디자이너가 파리의 심장부를 뚫었다’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제이콥스의 가세로 팔레 르와얄 공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패션 매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팔레 르와얄 상가의 구두 브랜드 ‘피에르 하르디’를 먼저 들러 봤다. 발렌시아가와 에르메스의 오트쿠튀르 구두를 만드는 디자이너 하르디가 자기 이름을 딴 브랜드를 내건 곳이다. 현대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모던 스타일의 구두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잠시 숍에 앉아 있는 동안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고급 오토바이용 헬멧을 한 손에 들고 나타난 금발머리 아가씨들, 모피코트 차림의 중년 여성…. 매니저인 보니타 바랑캉드 씨는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으며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디자인이 하르디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팔레 르와얄의 또 다른 재미는 프랑스 패션 하우스의 빈티지 의상을 취급하는 가게를 찾는 것이다. 이곳에서 잘 알려진 가게는 빈티지 패션 수집상인 디디어 르도 씨가 운영하는 명품중고의류점. 샤넬, 디오르, 발렌시아가, 입생로랑, 크리스티앙 라크로아 등 오트쿠튀르 드레스와 구두 가방을 판매한다. 아이템별로 ‘샤넬 1968’ ‘디오르 1959’처럼 디자이너와 제품 제작 연도를 안내문에 적어 놓았다.
20여 년 빈티지 수집상으로 일한 르도 씨는 “우아한 스타일이 다시 인기를 끌면서 입셍로랑과 샤넬을 찾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빈티지 의상은 특히 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팔레 르와얄 취재에 동행한 미국인 스타일리스트 크리스티나 팡 씨는 “미국인들 사이에도 프랑스 여성의 패션 감각을 ‘프렌치 시크’라고 부르며 동경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패리스 힐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스타일링을 담당한 바 있다.
르도 씨는 검정색 미니 드레스만을 판매하는 ‘라 프티트 로브 누아’ 매장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르도 씨가 스타일리스트 펠릭스 파링톤 씨와 함께 만든 블랙 드레스들을 판매한다.
유명 뷰티브랜드인 ‘세르주 뤼탕’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일본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가 도쿄 뉴욕과 함께 세계 3개 도시에서만 문을 연 고급 화장품 및 향수 라인이다. 1층에 진열된 향수들을 구경하다 화장품을 보자고 하니 점원이 2층 프라이빗 룸으로 직접 안내했다. 점원은 마치 보석을 다루듯 흰 장갑을 끼고 제품들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보여 줬다. 작은 립스틱 하나가 9만 원가량했다.
팔레 르와얄 상가에는 모피로 만든 실내용 슬리퍼, 향초, 인테리어 용품을 파는 ‘메종 드 바캉스’, 고급 화장품점 ‘엑시스트’ 등 흥미를 끄는 곳들이 줄지어 있다.
화제의 중심에 있는 마크 제이콥스 매장은 무채색의 로고와 흰색으로만 꾸며진 인테리어 디자인, 약간은 생뚱맞게 프랑스 국기가 그려진 서핑 보드 등으로 꾸며졌다. 이를 두고 인근 매장의 매니저들은 “그 가게는 너무 ‘미국적’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필자의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젊은 프랑스 소비자들은 고풍스러운 팔레 르와얄에 불어온 ‘새로운 바람’을 반기는 분위기다. 마크 제이콥스 매장에서 만난 프랑수아즈 밀요(24) 씨는 “실용적이고 신선한 ‘아메리칸 스타일’이 맘에 든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프렌치 시크’를 쫓아 중고 프랑스 패션 상점을 찾고, 파리지앵들은 ‘아메리칸 스타일’을 찾아 젊은 미국인 디자이너의 숍을 찾는다. 패션의 엇갈림이라는 재미있는 풍경이 팔레 르와얄에서 펼쳐지고 있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Kimyhyunjin5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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