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책은 중국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최신 연구 성과를 집약한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속론(속론)’. 중국의 국영 연구기관인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이 2003년 발간한 것을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인 서길수(徐吉洙) 서경대 교수가 번역하고 해설을 덧붙여 ‘동북공정 고구려사’(사계절·사진)란 책으로 28일 펴냈다.
속론은 동북공정이 공식 출범하기 전인 2001년 출간된 ‘고대 중국 고구려사 역사총론(총론)’의 뒤를 이어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집대성한 책이다.
‘총론’은 고구려는 예맥 계통이지만 선비, 숙신, 거란 등 주변 종족과 융합됐으며 멸망 후 중국에 편입됐고(민족 편), 705년의 역사 동안 중원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은 지방정권이었다(정치 편)는 내용과 한중일의 연구 종합(연구 편)으로 구성돼 있다. ‘속론’은 이를 더욱 정교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이론, 역사, 연구 편으로 구성돼 있다.
‘이론’ 편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이 모두 한족에 번속(藩屬)됐다는 고대 번속이론을 내세우면서 “몇 백 년이라고 해도 좋고 몇 천 년이라고 해도 좋다. 이 범위(청나라 영토)에서 활동한 민족은 모두 중국 역사상의 정권”이라고 주장한다. 또 고구려 왕실이 고 씨를 성으로 삼은 것은 하화족(한족의 원류)의 선조인 고양 씨의 후손이기 때문이라며 고구려인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중국에 두었다고 강변한다.
‘역사’ 편은 고구려가 고조선이 멸망한 뒤 세워진 한사군 가운데 하나인 현도군에서 세워졌기 때문에 이미 건국 당시부터 중국에 예속됐다고 주장한다. 또 고구려 건국신화인 주몽신화의 난생설화가 ‘은나라 시조인 간적이 검은 새알을 삼키고 임신했다’는 중국 고대설화와 닮았다는 점에서 고구려인은 은상(殷商)족의 후예라고 강변한다. 여기에 중국의 전설시대인 하상주시대를 역사시대로 둔갑시킨 하상주 단대공정에서 공포한 ‘하상주연표’를 끌어들여 “고구려인이 은상씨 족에서 분리된 것은 기원전 1600∼1300년”이라고 주장한다.
‘연구’ 편에서는 “대부분의 고조선족은 우리나라(중국) 상고 동이계족의 일원으로 그 족칭과 풍습, 습관과 문화는 한어(漢語)와 한문화(漢文化)의 특징과 완전히 부합한다고 여기고 있다”며 고조선사마저 공공연히 넘보고 있다. 또한 고구려사는 중국사이기도 하고 한국사이기도 하다는 중국의 기존 일사양용(一史兩用)론에 대해 “지금의 국경선을 이용하여 역사의 귀속을 나눠 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서 교수는 822쪽에 이르는 이 책의 서두에 동북공정 논리의 문제점을 비판한 해설을 붙였다. 총론과 속론의 집필을 주도한 마다정(馬大正)과 리다룽(李大龍) 등의 학자가 고구려사 비전공자로 중국 정부의 꼭두각시 학자라는 점과 그 논리를 뒷받침하는 자료들이 중국사료 가운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선별해 썼다는 내용이다.
서 교수는 “중국 측은 고구려를 한국의 역사로 기록한 송사(宋史) 등 중국 정사(正史)의 내용까지 비판하면서 자의적으로 뜯어고치려 하고 있다”며 “이 책의 번역을 계기로 우리 정부와 학계가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대응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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