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사로 초대된 그는 이라크전쟁이나 낙태, 안락사 같은 거대담론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뚱뚱한 미국, 갈수록 증가하는 어린이 당뇨 문제가 그의 주제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어린이 비만 퇴치 운동’의 공동대표다.
그는 “당뇨에 걸린 어린이의 힘겨운 일생, 높아가는 의료비용과 재정적자를 생각하면 이 문제에 미래가 달렸다”고 했다.
그는 한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나긋나긋한 남부 사투리로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클린턴 특유의 모습이다. 농담도 자주 했다. “백악관을 떠나 좋은 점은 연설문을 직접 쓸 자유가 생겼다는 것이지만, 아무도 내 생각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그의 통계수치 인용은 한마디로 못 말릴 정도였다. 미국의 의료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17%, 두 번째로 높은 나라가 스위스로 11%, 의료비용을 스위스 정도로만 내려도 연간 절감액은 700억 달러, GM 자동차 1대에 들어간 직원 의료비용은 1550달러, 포드는 900달러, 도요타는…. 의회전문 채널인 C-SPAN으로 중계된 화면을 지켜봤지만, 연설 도중 원고에는 거의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연설의 핵심은 “뚱뚱해서 불행하고, 재정적자가 커가는 미국은 먹는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자신 고교 시절 100kg이 넘는 비만아였다. 대통령이 돼서도 피자와 햄버거를 입에 달고 살았고, 그 때문에 2004년 심장수술까지 받았다.
그는 “나처럼 가난한 시절을 보낸 어린이가 값싸고 칼로리는 충분하지만 영양가는 없는 음식에 중독되기 쉽다”며 “감자튀김으로부터 미국 어린이를 보호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30분 연설을 마친 뒤 30분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질의응답에서도 정치판의 긴장감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만큼 ‘전직 대통령’이 던진 화두는 구체적이고,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MSNBC 기자가 쓴 취재기를 읽어 봤다. “청중 속에서 ‘3선을 금지한 헌법만 아니라면 또 당선될 것’이란 말이 나왔다”고 돼 있었다.
연설이 끝난 뒤 그에게 쏟아진 박수는 공연장의 열광을 연상시켰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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