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들을 위해 희생한 게 아니고 아이들 덕분에 우리가 정말 많은 은혜(Real benefits)를 받았지요. 새로운 세계와 문화를 알게 되었고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었으니까요.” 그는 아내가 김치도 담글 줄 안다고 말했다.
힉스 교수는 1974년 처음 한국인 아이를 입양했다. 둘째 아들을 낳은 부인이 건강 때문에 아이를 더 낳을 수 없게 되자 입양을 하기로 결정한 것. 마침 사회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이웃이 한국 아이들에 관한 얘기를 해 줘 곧바로 두 살 된 아이를 입양했다. 그때부터 1985년까지 10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했다. 6개월 된 유아에서부터 13세 청소년까지 다양했다.
새 아이를 입양하는 데 대해 다른 가족의 반대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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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은 우리 가족 모두가 한 것입니다. 입양을 결정할 때 아이들 모두 의견을 말하도록 했어요. 모두 기쁜 마음으로 새 식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면서 잘 지냈지요.”
“친아들 둘을 포함해 ‘한 다스(dozen·12명)’나 되는 아이들을 키울 때 어려움은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큰 아이들이 새로 온 어린아이들을 잘 돌봐 줘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자녀들은 지금 미국 전역과 일본 홍콩 등지에 퍼져 살고 있다. 입양아 가운데 한 명인 토머스 힉스(34) 씨는 아버지가 재직 중인 인디애나대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되었다. 2001년부터 2년간 한국의 대형 로펌인 ‘태평양’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 입양아 중 한 명은 올해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슈퍼볼에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한국계 하인스 워드 선수와도 절친한 사이라고 힉스 교수는 전했다.
아이들이 한국의 친부모를 찾고 싶어 하진 않을까.
“몇몇 아이는 찾고 싶어 하지요. 낳아 준 부모도 소중하니까 어떻게든 찾아 보라고 격려하고 도와주려 합니다.”
힉스 교수는 증권법과 회사법 분야에서 뛰어난 법학자이기도 하다. 미시간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뉴욕 월가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돈보다 가르치는 일이 더 좋아’ 1968년 로스쿨 교수로 자리를 옮겨 39년째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 전문위원이기도 한 그는 특히 주식 불공정 거래에 관한 국제적 규제와 협조 문제에 정통하다. 6일 증권선물거래소에서도 이것을 주제로 강연한다.
12일 출국하는 힉스 교수는 “아내와 함께 12명의 자녀를 데리고 아름다운 한국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이수형 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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