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체니 부통령), 내 지지율이 고작 38%인데 당신은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나를 좋아하는 변호사를 쏜 거요.” 이어지는 부시 대통령의 유머에 헤드 테이블에 앉아 있던 체니 부통령은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배를 움켜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체니 부통령이나 칼 로브 백악관비서실 부실장이 이 나라의 실세라는 음모론이 있다. 그렇지만 진짜 실세는 따로 있다”고 발언해 주위를 긴장시킨 뒤 “그 주인공은 바로 (체니 부통령의 부인인) 린 여사”라고 말해 또 웃음을 자아냈다. 이른바 실세라는 체니 부통령에게 갖가지 ‘지시’를 내리는 린 여사야말로 실세 아니냐는 농담이다.
부시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린 여사를 향해 “린, 지금까지는 잘해 왔는데 두바이 건(아랍에미리트가 미 주요 항만을 인수하려다 좌절된 일)에서 그만 일을 망쳤소”라고 말해 다시 한번 만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날 모임은 린 체니 여사가 공화당 측 사회를, ‘민주당의 차기 꿈나무’로 불리는 버락 오바머(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이 민주당 측 사회를 맡아 이라크 사태, 잭 아브라모프 로비 스캔들 등을 소재로 웃음을 선사했다. 오바머 의원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내게 두뇌가 있다면(If I only had brain)’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바꿔 ‘내게 매케인이 있다면’이라고 노래했다.
자기처럼 의원 윤리규정 개선에 적극적인 공화당 존 매케인 의원을 슬쩍 치켜세우면서 대선후보 지명을 꿈꾸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그의 처지를 빗댄 것.
참석자들은 부시 대통령을 조롱하는 말로 알려진 ‘더브야’(Dubya·부시 대통령의 가운데 이름 W를 희화화한 말)라는 표현도 서슴없이 사용했다.
일부 기자는 병아리 옷을 입고 나타나 조류 인플루엔자(AI)에 대한 공포증을 풍자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부시 대통령에게 무시를 당해 온 원로 여기자 헬렌 토머스는 “내 소망은 힐러리의 대관식”이라고 복수 아닌 복수를 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네 번째로 참석한 그리다이언 모임에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을 몰아내는 방법은 북한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도록 설득한 다음 민주당 선거전략가인 밥 시럼을 보내 김정일을 돕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밥 시럼은 그가 연설문을 써 준 민주당 후보마다 모두 낙선해 ‘패장 전담’으로 꼽혀 온 인물.
미 언론은 1943년부터 워싱턴 캐피털 힐튼호텔에서 열려 온 이 행사의 장소가 내년부터는 다른 곳으로 바뀐다고 전했다.
:그리다이언(석쇠)클럽 만찬:
워싱턴의 중견 언론인 66명이 미국 각계 유명인사 600여 명을 초청해 재담,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촌극 등으로 미국 내 현안을 풍자하는 행사. 올해로 121년째가 된다. ‘그슬리되 태우지 않는다(Singe, but never burn)’는 표어처럼 따끔한 풍자로 좌중을 웃기지만 직접적 공격은 삼간다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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