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사뮈엘 베케트.
모두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문호다.
1991년 유럽문화도시로 지정된 더블린 시는 첫 사업으로 이들 세계적인 문호를 기리는 더블린 작가박물관과 아일랜드 작가지원센터를 열었다.
유럽 최초의 작가박물관 건립은 문학이라는 무형자산을 통해 더블린만의 문화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후 ‘작가’는 더블린을 대표하는 문화자원이 됐다.
작품에 묘사된 거리 곳곳이 격조 있는 관광지로 변모해 간 것은 물론이다.》
○ 2006년 봄 더블린 시의 주인공은 베케트
==이미지 with 캡션==
봄을 맞은 더블린 시내 곳곳, 길거리 포스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노벨상 수상작가인 극작가 베케트(1906∼1989)다. 4월은 베케트가 태어난 달. 게다가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2006년 4월부터 2개월 동안 더블린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베케트가 남긴 향기로 가득 채워진다.
베케트를 기리는 이번 행사의 주 무대는 더블린 시가 자랑하는 극장들이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초대 덤블도어 교장 역을 맡았던 리처드 해리스(1930∼2002)를 배출한 에비 시어터나 1991년 처음으로 베케트의 19개 작품을 모두 공연했던 게이트 시어터 같은 유서 깊은 극장을 중심으로 베케트의 작품이 공연된다. 베케트 기념행사는 극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베케트와 관련된 음악, 사진, 시각예술 등이 도시의 모든 문화공간을 통해 이뤄진다.
리피 강 인근 템플바의 국립사진아카이브에서는 베케트와 관련된 사진전이 열린다. 밤이면 리피 강 주변에서 조명예술가인 제니 홀처 씨가 베케트 작품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영상으로 쏘는 이벤트를 벌인다. 베케트가 졸업한 트리니티대에서는 전 세계 베케트 전문가들이 모여 학술 심포지엄을 열 예정이다. 더블린의 길거리에서는 베케트의 주요 작품의 인상적인 장면이 공연된다. 도시 곳곳이 무대가 되고 지나가는 행인의 발걸음이 멈추면 그곳이 바로 극장이 되는 셈이다.
도시 전체를 문학 축제 공간으로 이용하는 이런 경험은 이미 2004년 ‘리조이스 2004 페스티벌’을 통해 더블린 시가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이다. 매년 6월 16일 제임스 조이스(1882∼1941)의 대표작 ‘율리시스’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음미하며 주인공 블룸의 하루 일과를 그대로 재현해 보는 ‘블룸스데이’ 축제는 있었지만 작가와 작품이 온전히 축제 이벤트로 기획된 것은 2004년의 리조이스 페스티벌이 처음이었다. 이 행사는 더블린 시에 일반적인 관광지도와는 다른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냈다. ‘율리시스’의 지도를 따라 100년 전 더블린을 찾아 나서면 문학 속에서 다뤄진 장소가 대부분 보존되어 있다. 보존된 장소는 일상생활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작가와 관련된 문화적 공간으로 재활용되기도 한다. 더블린 외곽 바닷가, 율리시스가 시작되는 샌티코브의 마텔로타워는 지금은 조이스 박물관이다. 율리시스에 ‘모럴’ 퍼브(pub)로 묘사된 ‘데이비 번즈’라는 퍼브는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문학작품 속에 묘사된 기존 공간 최대한 활용
아일랜드의 또 다른 명물인 기네스 맥주. 더블린 시내를 흐르는 리피 강 남쪽 기네스 맥주공장에 마련된 전망대 기네스하우스는 더블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창의 원형 전망대다. 이곳에서 만난 영국인 관광객 리처드 바울리 씨는 “문학의 창을 통해 도시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더블린 시는 문화 페스티벌을 치르면서 기존 공간을 최대한 재활용하고 각각의 문화공간을 기획된 콘텐츠를 통해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줌으로써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문화효과를 창조해 냈다. 도시가 제공하는 문화프로그램의 근본적인 효과는 관광수입 유발보다는 문화가 시민들의 흥미로운 일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더블린 시가 낳은 노벨상 작가와 작품을 명예와 자랑거리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생활문화로 재창조하는 아이디어의 원천은 바로 이런 인식에 있다.
문학작품 속의 장소와 행위가 도시 곳곳에서 재현되는 작가 페스티벌은 이제 더블린의 모든 길거리를 생활 속의 문학박물관으로 만든다. 베케트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와 리조이스 2004의 기획자인 로라 번즈 씨는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이 더블린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기억되고 음미되어 문학이 도시민들의 생활문화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한다.
더블린=이영범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 문화의 거리 ‘템플바’
예술을 통한 지역개발… 도시 空洞化 막아
“퍼브를 피해서 더블린을 걷는다는 것은 마치 퍼즐게임을 벌이는 것과 같다.”
‘율리시스’의 주인공 블룸의 말이다. 퍼브의 도시 더블린에서 가장 활력 있는 문화예술공간으로 꼽히는 곳 역시 22개의 아이리시 퍼브가 몰려 있는 템플바 지역이다.
더블린 시를 관통하는 리피 강 남쪽 웨스트모얼랜드 거리와 피샘블 가(街) 사이의 세 개 블록을 일컫는 이곳의 구심점은 말할 것도 없이 1840년 세워진 템플바다.
한때 버스터미널로 재개발될 뻔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고 대신 예술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는 개발계획이 수립됐다. 1991년 더블린이 유럽문화도시로 지정되자 28에이커에 이르는 템플바 지역 일대가 문화예술지구 정비사업 지역으로 지정됐다.
사업을 위해 지역 상인들과 문화예술가, 그리고 시 정부가 함께하는 템플바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2001년 재개발 사업이 완료되면서 이 지역은 영화, 음악, 공연, 디자인, 시각예술의 다양한 문화 커뮤니티가 만들어 내는 문화적 활기로 새롭게 융성기를 맞았다. 템플바 커뮤니티는 이런 변화와 더불어 슬럼화한 지역의 주거지 재개발을 통해 도시 공동화를 막고 2500명의 지역주민이 다양한 문화 기회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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