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드밀라 푸틴, 말없이 순종하다
류드밀라 푸틴(48) 여사는 국내선 항공 승무원 시절인 1980년 친구의 소개로 청년 푸틴을 극장에서 만났다. 뭇 남성의 청혼이 끊이지 않던 류드밀라가 국가보안위원회(KGB)의 말단 요원 푸틴에게 첫눈에 반한 이유는 ‘작아도 뜻이 큰 대장부였기 때문’. 푸틴도 헤어질 때 지하철역에서 KGB 규정을 무시하고 류드밀라에게 부서 전화번호를 손에 쥐여 주었다. 3년 뒤 류드밀라는 청혼을 받는다.
“나는 절대 좋은 남편이 될 수 없소. 위험한 순간도 많을 것이오.”
그들은 석 달 뒤 네바 강 유람선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4평 정도의 작은 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이 방에서 두 딸이 태어났다. 푸틴 대통령은 지금까지 부인의 요리 솜씨에 대해 단 한 번도 칭찬해 준 적이 없지만 류드밀라 여사는 평생 말없이 남편의 뜻을 따랐다고 한다. 둘의 결혼생활은 거의 언론에 노출된 적이 없다. 서방언론들은 류드밀라 여사는 ‘크렘린궁의 가장 큰 비밀’이라고 묘사했다.
○ 셰리 블레어, 논리로 맞짱뜨다
“남편이 외도하지 않는 것은 25년 결혼생활이 견고해서가 아니라 만일 한눈을 팔면 내가 그를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셰리 블레어(52) 여사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의 변호사로 잘나가던 청년 토니 블레어가 주변의 숱한 미녀를 마다하고 좌익 운동가 집안 출신의 변호사 셰리 부스를 택한 것은 그녀가 그에게 논리로 ‘맞짱’을 뜨는 유일한 여성이었기 때문.
셰리 여사는 남편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남편이 총선 승리를 위해 동분서주할 때도 그녀는 고등법원에서 승소를 위해 뛰었다. 1996년에는 ‘영국변호사협회가 뽑은 올해의 변호사’에 선정될 정도.
1997년 남편이 총리에 당선된 뒤 셰리 여사는 언론의 이슈메이커로 떠올랐다. 남편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가 하면 잠옷차림으로 배달부 앞에 나서 파파라치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도 고액 강연료 등으로 남편의 지지도를 깎아내리고 있다.
○ 로라 부시,사랑으로 감싸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성격의 도서관 사서 로라 부시(60) 여사는 1977년 31세의 동갑내기 노총각 조지 W 부시와 운명처럼 만난다. 당시 부시는 300만 달러가 넘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다. 자동차 정비공장 위층에 살면서 세탁기도 없어 친구 집에 찾아가 세탁을 해야 하는 신세였던 것.
20세에 약혼을 깬 그는 난봉꾼에 술만 먹으면 통제 불능이었다. 그런 부시에게서 로라는 무엇을 본 것일까. 둘은 6주 만에 전격 결혼했다.
이후 부시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술도 끊고, 잘 되지 않던 사업에서 손을 떼고 정계에 뛰어들어 승승장구했다.
언론들은 현모양처형의 로라 여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부시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지금도 로라 여사는 오후 9시만 되면 잠에 곯아떨어지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정말 세계의 폭정을 종식시키기를 원한다면 좀 더 늦게 잠자리에 들어야 해요.”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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