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노동법에 반대하는 프랑스 대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뜻밖에 세계적으로 공짜광고를 하게 된 1회용 화장지 회사는 몰래 웃을지 몰라도, 취업 2년 안에 이유 없이 해고당하게 생긴 젊은 세대는 절박하다. 지나친 노동 보호 때문에 일 못하는 직원도 못 자르는 기업이 새 일꾼을 고용할 리 없다. 당장 일자리가 아쉬운 젊은층만 죄 없이 칼 맞은 판이다. “이력서 수백 장을 냈어도 면접 한번 못 봤다”는 소르본대학생의 말은 여기서도 많이 듣는 소리다.
경직된 노동시장 뒤에는 ‘프랑스 사태’의 진짜 원인이 숨어 있다. 이 나라가 자랑해 온 평등교육이다.
1989년에 나온 프랑스 교육관련법 1조는 ‘교육은 기회의 평등에 기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학교가 평등의 실현 수단이어야 하므로 정부는 대학입학시험부터 교육과정까지 일일이 관여한다. 국립행정학교 등 극소수의 엘리트 교육기관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은 거의 평준화돼 있다. 우리나라 전교조가 주장하는 ‘국립대 평준화’의 모델이 바로 프랑스다.
그 덕분에 대학생 수가 날로 늘었지만 대학의 질은 되레 떨어졌다. 일종의 적성시험인 ‘바칼로레아’만 합격하면 갈 수 있는 ‘보통 대학’의 학생들은 스스로를 이류 계급으로 여긴다. 프랑스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돈은 국내총생산(GDP)의 1.1%에 불과해 ‘주차장 대학’이 됐다. 2.7%를 투자하는 미국과 비교가 안 된다. 게다가 오만 가지 간섭까지 해 대면서 교육 잘되기를 바란다면 도둑 심보다. 대학 간판만 있을 뿐 실력은 없는 과잉 학력자 양산이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으로 나타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열흘 전 내놓은 프랑스 교육에 대한 평가는 참담한 수준이다. “유럽 교육이 미국은 물론 아시아에도 뒤떨어졌다”며 프랑스와 독일은 이제 지식 창출의 리더에 끼지 못한다고 했다. 특히 프랑스는 평등만 강조하다 고숙련 인력을 키워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실업을 잡으려면 교육부터 잡아야 한다”는 프랑스 경영자협회 로랑스 파리소 회장의 처방전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평등교육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엘리트 교육기관도 평준화하자고 주장한 이념형 교원단체가 설친다는 점에서, 대학생들이 시장(市場)을 적(敵)으로 볼 만큼 경제에 무지하다는 점에서 프랑스 사태는 결코 남의 일로 볼 수 없다.
우리나라 청년실업률(7.6%)은 프랑스(22.3%)에 비하면 고마울 만큼 낮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취업이 안 돼 아예 구직(求職)을 포기한 비(非)경제활동 인구에다 그냥 노는 유휴 비경제활동 인구 등을 합치면 4명 중 1명이 백수건달이다. 기업에선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인데 눈만 높은 고학력 실업자들은 웬만한 직장은 거들떠도 안 본다. 뼈 빠지게 자식 과외시켜 대학 보냈던 부모들 억장만 무너질 판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앞으로 더 심해진다는 데 있다. 지난해 말 대통령에게 보고된 ‘국가인적자원개발기본계획’은 2015년까지 55만 명의 대졸 실업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에서 쓰겠다는 신규 수요보다 연 5만 명씩 더 많은 인력이 전문대, 대학, 대학원에서 쏟아질 상황이다.
지식기반산업에 필요한 초일류 인재들은 어딜 가든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그저 그런 대학에서 그저 그런 전공을 택한 졸업생은 백수 되기 십상이다. 우리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거나 노동시장이 획기적으로 유연해지지 않는 한 “우리는 크리넥스가 아니다”는 외침이 언제 서울 거리에서 터져 나올지 모를 일이다.
OECD와 유럽연합(EU)을 비롯해 골수 좌파가 아닌 전문가들의 해법은 일치한다. 노동과 교육시장을 유연성 효율성 위주의 시스템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그래도 정부가 안 바꾼다면 국민이 그 정부를 바꾸는 것 외엔 살길이 없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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