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미래로 미래로]<20·끝>쿠바 아바나

  • 입력 2006년 3월 24일 03시 08분


호세 마르티 혁명기념탑에서 내려다본 아바나 시 전경. 사진 제공 이종호 교수
호세 마르티 혁명기념탑에서 내려다본 아바나 시 전경. 사진 제공 이종호 교수
《1991년 옛 소련이 붕괴했다. 파장은 즉각 쿠바를 덮쳤다. 그때까지 잘나가던 경제는 사실 쿠바라는 교두보를 지켜 내려는 공산권의 과잉 지원에 힘 입은 착시 현상이었다. 쿠바의 농지 대부분은 여전히 사탕수수밭이었고 식량을 조달할 길이 없었다. 1992년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국가 비상시기’임을 선포하며 고백해야만 했다. 밭을 갈 트랙터에 넣을 기름, 땅의 힘을 돋울 비료 그리고 열대의 해충을 구제할 농약, 그 어느 것도 이제 없다고….》

그로부터 15년. 절박한 상황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생존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현재까지 상황은 비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아바나는 이제 ‘지속 가능한 도시란 어떤 것인가’라는 이 시대 대도시들의 고민에 하나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해답은 ‘도시농업’이라는 실마리로부터 나왔고 ‘나의 녹화계획’, ‘메트로폴리탄 공원 프로젝트’로 이어져 나갔다.

○ 도시의 빈 터를 남기지 마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국영농장의 생산체제는 가족농장, 협동농장으로 대체됐다. 화학비료에 의지하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은 다양한 종류의 유기농작물을 기르는 농장으로 변모했고 화학비료나 제초제 대신 생태의 순환체계를 잘 활용하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집들 사이의 빈 터마다 텃밭을 만들었고 발코니에 내놓은 화분에도 집에서 먹을 푸성귀를 키웠다. 아바나 시 면적의 40% 이상이 농지로 바뀌었다. 건물이 낡아 헐리면 당국은 그곳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그 결과 도시의 생태적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이자 서구의 많은 도시가 확보하려 애쓰는 비오톱(biotop·다양한 생물종의 공동 서식 공간)이 아바나 시내 곳곳에 자연스레 형성됐다.

‘나의 녹화(綠化)계획’은 아바나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현저히 줄어들었던 녹지는 조금씩 예전의 울창했던 숲으로 회복되어 나갔다. 급기야 아바나 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알멘다레스 강을 따라 원시림에 가까운 생태계가 자라나게 되었다. ‘메트로폴리탄 공원 프로젝트’가 작동한 결과다.

아바나 시를 가로지르는 알멘다레스 강변에 펼쳐진 메트로폴리탄 공원. 220만 명이 사는 도시 속의 공원이 아니라 전형적인 열대우림을 연상시킨다. 이 공원은 ‘지속 가능한 도시’의 세계적인 사례로 연구되고 있다.
○ 아바나의 허파로 되살아난 열대림 공원

“지금 우리는 도시의 허파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자연스러움은 사실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이죠.”

아바나 시 도시공원공사에 소속된 둘체 알몬트 씨의 설명이다.

알멘다레스 강 한가운데 호세피네 섬에 서면 도무지 이곳이 인구 220만인 도시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믿기질 않는다. 울창한 열대림이 하늘을 덮고 포장 없는 작은 길들이 마치 그냥 생겨난 듯 자연스레 걸음을 이끈다. 강물은 소리를 내며 바다로 흐른다.

이 지역에 대한 첫 번째 도시공원계획은 1920년대 프랑스 조경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1940년대를 거치며 공원은 동식물원과 놀이시설, 산책로 등이 있는 상투적인 모습의 근대적 공원으로 ‘정비’됐다.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공원은 인구가 밀집된 주택지역에 둘러싸였다. 시간이 흐르며 강물은 점점 오염되고 유역에는 쓰레기가 나뒹굴게 되었다.

그러나 ‘도시농업’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시민들은 새로운 도시 공원계획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1994년 지역의 활성화와 환경개선에 역점을 둔 도시공원계획이 건축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졌다.

아바나의 명물인 잉글라테라 호텔 앞 노천카페의 재즈밴드. 농업도시 프로젝트의 성공을 통해 경제적 여유를 찾아가는 아바나 시는 문화적으로도 융성기를 맞고 있다. 사진 제공 이종호 교수
계획은 공감을 얻었고, 민관을 포함하여 외국 정부, 비정부기구들의 참여와 지원이 잇따랐다. 2001년 드디어 지금의 도시공원공사가 설립되면서 하천의 정화, 도시농업, 삼림 재생, 폐기물 처리사업 그리고 환경 교육이라는 다섯 갈래의 사업이 서로 강한 연계 속에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공무원들은 지역사회와 끈질기게 대화를 나누고 참여를 유도했다.

캐나다와 같은 서방세계의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메트로폴리탄 공원 프로젝트’에 재정 지원까지 해 가며 그 변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곳에서 자기들의 도시를 위한 대안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움을 이겨 내며 또 하나의 다른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대를 나온 아시아 전문가 호세 페레(50) 박사의 말이다. 모든 전망이 장밋빛은 아닐지라도 아바나가 말하려 하는 것은 분명하다.

‘도시여,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보라. 혹시 미래가 그곳에 있을지도….’

▼농업으로 이룬 여유 거리마다 리듬 리듬▼

1961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아바나 교외의 골프클럽 잔디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멋진 장소를 어떻게 ‘인민’들과 함께할 것인가.

그 결과 음악 미술 무용을 가르치는 새로운 국립예술대(ISA·Instituto Superior de Artes)가 설립됐다. 건축가 리카르도 포로 씨는 아열대의 기후에 걸맞고 구조와 재료 그리고 공간배치를 통해 쿠바의 지역성을 추구하면서도 혁명의 열정을 상징하는 건물들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공사는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혁명을 둘러싼 건축적 해석은 저마다 달랐고 이내 논쟁에 휩싸였다. 오랜 시간 학교는 일부 완성된 시설만으로 운영됐다. 그리고 지금 학교 시설은 다시 당초의 계획에 따라 건설되고 있다.

학교를 둘러싼 변화는 지금의 아바나가 ‘농업도시’를 통해 이룬 여유를 드러내는 문화적 징표다. 국립예술대만이 아니다. 아바나의 명물 잉글라테라 호텔 노천카페에서는 4인조 밴드의 흥겨운 리듬과 거리의 소음이 활기차게 뒤섞인다. 여인들은 리듬 위를 걷고 있다.

아바나=이종호·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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