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도 하기 전에 다 취업=충칭(重慶) 시 남서 외곽에 자리한 직업고교인 충칭시 관광학교.
3월 초 이 학교의 쓰촨요리 과정을 찾았을 때 영문을 몰라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분명히 3년제로 들었는데 학교에 2, 3학년생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
위더핑(余德平·34) 선생은 “외부 실습은 3학년부터지만 호텔이나 유명 음식점에서 학생을 보내 달라는 부탁이 빗발쳐 2학년 2학기부터 모두 실습을 내보낸다”고 설명한다. 중국은 가을에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봄은 2학기에 해당된다.
안내를 맡은 왕빙(王兵·35) 부교장은 취업률을 묻자 “1000%”라고 중국인 특유의 과장을 섞어 능청스럽게 답한다. 워낙 학생을 달라는 곳이 많아 2학년 2학기부터 실습 나간 곳에서 대부분 취업이 결정된다는 것.
▽혹독한 훈련=“파를 적게 넣었잖아” “조미료가 너무 달아” “요리 색깔이 너무 검어” “음식을 잘못 담아 그릇 주변이 지저분해졌잖아” 학교 별관 1층 실습실 곳곳에서는 선생님에게 혼나는 소리가 들린다. 30여 명의 학생이 수업시간에 배운 노트를 펴 놓고 각종 볶음요리(炒菜)를 한 다음 교사의 평가를 받는 시간이다.
면과 디저트를 만드는 찬뎬(麵點) 과정을 가르치는 2층 실습실에서는 학생들이 밀가루 반죽으로 각종 국수를 뽑아낸다.
한 학생이 명주실처럼 가느다란 룽쉬(龍鬚)면을 뽑아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곧바로 면발이 타 버린다. 저우융(周勇·42) 교사는 “밀가루 500g으로 30km의 룽쉬면을 뽑아낼 수 있다”며 “이 면은 바늘구멍에 들어갈 정도로 가늘다”고 말한다.
본관 2층 실습실에서는 학생들이 당근 무 오이 등으로 봉황 백조 꽃병 등 각종 조각을 만든다. 중국 요리의 3대 요소인 색(色) 향(香) 미(味) 가운데 색을 강조해 음식 맛은 물론 연회 기분을 북돋는 장식으로 필수라는 것.
수많은 요리 과정을 익히기 위해 수업은 스파르타식으로 이뤄진다. 1학년생인 황창자오(黃昌召·17) 군은 “오전 7시 반에 수업이 시작돼 오후 5시에 끝난다. 또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자습을 하고 조각 등 수업시간에 못 끝낸 과제가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완성해 다음 날 선생님에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장 단련을 통한 독특한 수업법=학교에서는 일류 요리사를 배출하기 위해 조리법과 영양학은 물론 문화와 미술도 배워야 한다.
‘음식은 예술이자 문화’라는 생각 때문이다. 다른 요리를 참고해 더 수준 높은 쓰촨요리를 창안해 낼 수 있도록 광둥요리와 서양요리도 가르친다. 학생들의 창업을 돕기 위해 관리와 원가 지식, 영어와 컴퓨터 교육도 진행한다.
특히 이 학교는 현장 단련이라는 독특한 수업법을 도입하고 있다. 1992년 베이징(北京)의 음식점 2곳을 임차해 학생과 교사에게 자체 경영을 맡겼다. 최근 현장 단련 음식점은 30곳까지 늘었다. 교사와 학생들이 만든 음식을 손님들이 직접 평가해 더욱 정교한 맛을 개발하기 위한 것. 그 과정에서 요리 솜씨가 느는 것은 물론이다. 학교 수업과 현장 단련에는 외부의 유명 요리사를 수시로 초빙해 강의를 듣고 시범을 보기도 한다.
▽미각 테스트에 합격해야 입학=고교 직업과정인 만큼 대부분 중학교를 마치고 입학한다. 쓰촨요리 과정은 한 학년에 100여 명을 뽑지만 보통 600여 명이 지원한다.
가장 중시하는 것은 면접. 근시가 심하거나 몸이 약하면 탈락된다. 근시가 심하면 요리의 익는 정도를 제대로 볼 수 없고 몸이 약하면 힘든 주방 일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 가장 중요한 것은 미각 테스트다.
쓰촨요리는 짜고(鹹) 달고(甛) 시고(酸) 맵고(辣) 얼얼한(麻) 5가지 기본 미각에 24가지 복합 미각을 곱해 120가지의 맛을 낸다. 이 맛의 조절에 따라 다시 수백 가지의 요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민감한 미각을 갖추지 못하면 결코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충칭=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
▼“한국 학생 입학 환영… 중국어 실력은 기본”▼
“베이징의 쓰촨요리점 진바이완(金百萬)의 수석요리사가 우리 학교 1995년도 졸업생인데 현재 연봉이 80만 위안(약 1억 원)이다. 전국적으로 연봉 20만 위안(약 2500만 원) 이상의 졸업생이 100명이 넘는다.”
바오샤오춘(鮑曉邨·사진) 충칭 시 관광학교 교장은 대뜸 학교 자랑부터 늘어놓는다. 중국 대기업 직원의 평균 연봉이 1만 위안이 채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액 연봉이다.
지금까지 쓰촨요리 과정만 2000여 명이 졸업했는데 베이징 상하이(上海) 톈진(天津) 등 대도시 쓰촨요리점의 요리사 대부분이 충칭 관광학교 출신일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
바오 교장은 “요리에는 문화뿐 아니라 인격이 담겨야 한다”는 말을 특히 학생들에게 강조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보았으며 대장금의 배우고자 하는 정신과 명리(名利)를 떠나 음식에 모든 정성을 담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충칭 관광학교는 1960년 일반 고교로 출발했으나 1982년 직업학교로 바뀌었다. 현재 요리, 관광, 비서, 컴퓨터, 회계학 등 20여 개 전공이 있으며 이 중 쓰촨요리 과정은 초창기 개설돼 24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고교 과정의 직업학교인 만큼 학비는 일반 고교와 똑같이 저렴하다. 1년 학비가 2000위안(약 25만 원)이고 기숙사비는 1년에 600위안(약 7만5000원)이다. 하지만 개교 이후 외국인 학생은 없었다.
바오 교장은 “한국 학생의 입학을 당연히 환영한다”며 “수업을 따라갈 정도의 중국어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외국 학생을 받아 본 적이 없어 교과과정과 학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며 시설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86-23-8909-1554, www.cqlyxx.com
충칭=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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