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에 따른 일손 부족 현상은 수도 도쿄(東京)에서도 마찬가지. 외식업체들은 시간제 사원을 다른 업체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앞 다퉈 급료를 올려 주고 있다.
일본 경제가 빠른 속도로 살아나고 있다. 투자, 고용, 소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동반 상승하는 선순환 현상도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청년실업’은 남의 일=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오름세를 타고 있는 경기의 최대 수혜자는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 빙하기라는 말은 아예 자취를 감춰 버렸다.
3월 도쿄 쇼와(昭和)여대 일본문학과를 졸업한 야노 가오리(矢野香里) 씨는 인문계 출신에다 여성이란 ‘불리함’까지 있었지만 지난해 3월 내로라하는 대기업인 히타치 계열사에 취직이 내정됐다. 졸업 전에 대학생을 사원으로 내정하는 것은 일본 기업의 전통.
야노 씨는 “올해는 취업이 지난해보다 더 쉬워졌다”면서 “2곳 이상의 기업체에서 내년 입사자로 내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후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내년 졸업 예정인 대학 4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주요 대기업의 인재 쟁탈전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채용 인원을 평균 20% 늘렸을 뿐 아니라 우수 인재를 붙잡아 두기 위해 새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쏟아 내고 있다.
후생노동성과 문부과학성이 공동 조사한 결과 올 3월 대학 졸업생 중 2월 1일 현재 취직 내정자 비율은 85.8%. 예년 추세를 고려하면 올해 실제 취직률은 96%를 넘어설 전망이다
▽경제적 약자에도 온기=23일 사이타마(埼玉) 현 사이타마 시 ‘고령자 삶의 보람 지원센터’ 강의실에서는 시나 도시야(椎名敏也) 일본 체인약국협회 사무총장보좌가 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 60∼65세의 퇴직자 28명에게 샴푸 등 생활용품을 진열하는 법을 강의하고 있었다.
한국과는 달리 의약품 외에 생활용품을 팔고 있는 일본의 체인약국들은 근무 여건이 좋은 편이라 60세가 넘는 고령자가 취직하기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실업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고 개인의 지갑도 두꺼워지면서 소비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특히 고급품에 대한 소비는 1980년대 거품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도쿄 중심가 백화점에서는 1개에 180만∼300만 엔씩 하는 값비싼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꾸준히 팔리고 두 자릿수로 매출이 늘어난 고급 음식점이나 술집도 적지 않다.
불붙듯 살아나고 있는 소비에 자신을 얻은 미쓰코시, 이세탄, 다카시마야, 마쓰자카야 등 대형 백화점들은 수백억 엔을 쏟아 부어 점포를 넓히거나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상당수 제조업체는 지난해와 올해 3월 결산에서 경영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연이어 경신하면서 대규모 설비투자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제조업 부활이 선순환으로=경제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의 요즘 모습을 ‘기업에서 가계로의 선순환’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즉 제조업체가 적자와 빚더미에서 빠져나와 활발하게 설비투자를 하면서 일자리도 많아지고 덩달아 개인소득도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제조업체가 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온 비결은 무엇일까.
오디오 제조업체 켄우드의 성공 사례가 이를 잘 보여 준다. 1993년부터 9년 연속 적자를 낸 켄우드는 2002년부터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계측기 등 채산성이 맞지 않는 부문을 팔거나 청산했으며 원가를 30% 삭감했다.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해 불량률은 4분의 1로 낮췄다.
그 결과 경영실적은 흑자로 전환했고 올 1월에는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던 오디오공장을 일본 국내로 옮겨 왔다. 인건비 부담은 6, 7배 늘었지만 상하이공장에서 14명이 하던 조립공정을 일본공장에서는 1명이 할 수 있게 하는 등 생산성을 크게 높였기 때문에 경쟁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
가벼워진 몸집만이 달라진 일본 기업의 전모는 아니다. 10년이 넘는 장기불황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일본 기업은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해 왔다. 지구 온난화가 심각해질수록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믿음이 꾸준한 투자를 가능하게 했고, 그 결과 다시 경쟁력 우위에 설 수 있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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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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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市 ‘도요타 머니’에 즐거운 비명▼
아이치 현 나고야 시 나고야 역 주변을 돌아보면 일본의 부동산시장이 15년 동안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들린다.
1990년대 초중반 황량했던 나고야 역 주변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은 즐비한 초현대식 신축 건물과 생동하는 경제적 활기에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나고야 역사(驛舍)를 나오면 올해 초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공시지가가 38%나 오른 메이테쓰 백화점이 보인다. 일본 전국 공시지가 상승률 상위 10위 가운데 나머지 7곳도 모두 이곳에서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에 있다.
이 일대 부동산 값이 급등하고 있는 이유는 나고야 역 맞은편에 47층짜리 도요타자동차 사옥 마무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도쿄에 있는 도요타의 해외영업부문 등이 내년에 이곳으로 옮겨 오면 주변 음식점이나 쇼핑시설 등의 매출이 크게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부동산 시장에 불을 지핀 것.
나고야 시는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 하나가 지역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 나고야 경제는 1시간 정도 떨어진 도요타 시에서 흘러들어오는 ‘도요타 머니’ 덕분에 장기 불황의 충격을 가장 적게 받았다. 지금은 내실 면에서 도쿄나 오사카(大阪)를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나고야의 최대 번화가인 사카에(榮) 거리에 가면 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사카에 거리 중심에는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백화점인 마쓰자카야가 자리 잡고 있다.
마쓰자카야 옆에는 젊은 층 취향의 쇼핑센터 파르코 나고야점이 있다. 파르코의 본점은 도쿄 시부야(澁谷)에 있지만 매출액은 나고야점이 더 많다.
2000년 나고야 역사 안에 백화점 다카시마야가 들어설 때 실패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나고야 고립주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배타적인 나고야 문화가 오사카에 뿌리를 둔 다카시마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봤던 것이다. 하지만 다카시마야 나고야점은 안정적인 매출과 수익을 올리며 나고야 경제의 활기를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나고야 시민이 얼마나 알부자인지를 보여 주는 통계가 저축액이다. 2004년 기준 나고야 시 근로자 가구의 저축액은 1688만 엔으로 주요 도시 가운데 1위였다. 이에 비해 도쿄 23개 구 지역은 1633만 엔, 오사카 시는 1190만 엔에 불과했다. 또 아이치 현은 도요타와 수많은 협력업체가 만들어 내는 일자리 때문에 전국에서 실업 걱정이 가장 적은 곳이다. 아이치 현은 2000년부터 5년 연속 완전실업률 전국 최저를 기록했다.
나고야=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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