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쟁, 경제교육이 열쇠다]<上>美어린이 경제교실

  • 입력 2006년 3월 31일 03시 01분


‘64Q’ 공립 초등학교에서 실시된 JA 뉴욕 지부의 경제교육 현장. 학생들이 돈의 유통과정을 쉽게 설명한 랩송 교재를 들으면서 경제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제공 재클린 돌리
‘64Q’ 공립 초등학교에서 실시된 JA 뉴욕 지부의 경제교육 현장. 학생들이 돈의 유통과정을 쉽게 설명한 랩송 교재를 들으면서 경제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제공 재클린 돌리
“저요, 저요.”

28일 오후 뉴욕 퀸스에 있는 ‘64Q’ 공립 초등학교 3학년 교실. 이곳에서는 미국 최대 규모의 비영리 경제교육기관인 JA(Junior Achievement·‘청소년의 성취’라는 뜻) 뉴욕 지부가 주최한 경제교육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경제교육을 담당한 ‘고교생 교사’가 돈을 만들어 내는 곳을 묻자 여기저기에서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대답은 다양했다. 대통령, 은행, 공장, 쇼핑센터 등. 누군가 ‘백만장자’라고 말하자 “와” 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학생 중 한 명이 ‘조폐국(mint)’이라고 정답을 말하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이날 교육 내용은 조폐국에서 찍어낸 돈이 은행에서 출발해 피자가게, 꽃집, 백화점 등을 거쳐 은행으로 다시 입금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 주는 것.

흥미를 끌기 위해 돈의 흐름을 만화로 보여 주는 교재자료가 학생들에게 배포됐다. 이날 교육에서 ‘비장의 무기’는 랩송으로 제작한 교재. 그전까지만 해도 떠들던 아이들이 귀에 익숙한 랩송이 나오자 노래에 맞춰 어깨춤을 추기도 하면서 더욱 교육 내용에 집중했다.

한 학생은 수업이 끝난 뒤 “이제 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다”며 “앞으로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면 계획을 세워 돈을 쓰겠다”고 말했다.

바로 옆의 2학년 교실에서는 식당 창업이 주제였다. 종이로 만든 식당모형을 가지고 식당 위치 선정에서부터 어떤 음식을 팔 것인지, 그리고 음식 가격은 어느 정도가 바람직한지를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해 동료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가격을 너무 비싸게 책정하면 손님들이 줄고, 너무 낮게 책정하면 이익이 남지 않는 시장원리를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유도했다.

또 다른 반에서는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현금 대신 많이 쓰는 수표작성 방법과 은행에 돈을 입금하는 요령을 가르쳤다.

이 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킴벌리 리처드슨(여) 씨는 “정규 수업과정에서는 대개 수학과 읽기 과목 위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경제교육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JA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돈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돼 실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걷고 있는 미국. 이곳에서는 이처럼 오래전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장을 이해하고 기업가 정신을 키울 수 있는 산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이같이 피부에 와 닿는 경제교육을 통해 ‘미래의 기업인’과 ‘건강한 경제인’을 양성해 결과적으로 미국 사회가 더욱 부강해지도록 하자는 취지다.

특히 1916년 창설된 청소년 경제교육 기관 JA는 미국 전역에 지부를 두고 연간 700만 명의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제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이 단체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진출해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에 자리 잡은 JA 뉴욕 지부도 뉴욕 시 일대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매년 9만5000여 명에게 경제교육을 시키고 있다. 교육 내용은 시장경제 작동원리, 세계화, 창업, 직업교육, 경영과 기업윤리 등 다양하다.

교육 내용에 따라 이미 JA에서 경제교육을 받았던 고교생들이 교사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직접 교사로 나서기도 한다. 뉴욕 지부에만도 3900여 명이 이미 자원봉사자로 올라와 있다. 기업들은 직원들의 경제교육 자원봉사를 적극 유도하는 한편 교육에 필요한 후원금을 내놓기도 한다.

현재 금융회사인 피델리티벤처의 파트너로 있으면서 JA 뉴욕지부 회장을 맡고 있는 필립 린치 씨도 그동안 직접 자원봉사를 계속 해 왔다. 린치 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도 첫 강의를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제가 처음 자원봉사를 한 학교는 뉴욕 시내의 생활형편이 어려운 지역에 있었어요. 외국화폐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제가 여행했던 홍콩, 멕시코, 유럽에서 사용했던 돈을 가져가 학생들에게 한번 만져보라고 하면서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제가 돈을 맡기면서 그들을 신뢰했다는 사실에 감격했어요. 수업이 끝난 뒤 ‘다시 한번 와 줄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학생뿐 아니라 저도 강의를 통해 많이 배웠습니다.”

한편 1946년에 설립돼 현재 20만 명 이상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경제교육 기관인 데카(DECA)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고교생과 대학생이 주 대상으로 마케팅, 경영, 기업창업 등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역시 경제교육 기관인 경제교육국가위원회(NCEE·National Council on Economic Education)도 미 전역에 260여 개 센터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문맹’ 퇴치 캠페인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1995년 설립된 점프스타트(Jump$tart)도 금융교육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요즘은 방송에서도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경제교육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PBS는 최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로 유명한 로버트 기요사키 씨를 초청해 몇 차례에 걸쳐 경제교육 방송을 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경제교사로 나선 고교생들 “진로 결정에 큰 도움”▼

JA ‘경제교육 대사’로 임명된 고교생들. 왼쪽부터 리사 콩, 보리스 매나키모프 ,멜라인 주커만, 에머슨 누레즈. 뉴욕=공종식 특파원

JA는 해마다 경제교육을 받은 학생들 중에서 성적이 우수하고 리더십이 뛰어난 학생을 선발해 ‘경제교육 대사’로 임명한다.

이들은 JA를 대표해 각종 행사에 나가 경제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때로는 초등학교 경제교육 프로그램에 ‘교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28일 뉴욕 맨해튼 42번가에 있는 JA 뉴욕 지부 사무실에서 올해 경제교육 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고교생 4명을 만나 경험을 들어 봤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경제교육을 통해 몰랐던 세계를 좀 더 잘 알게 됐고 진로 결정에도 크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을 만나 실제 직업세계를 알게 돼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저는 올해 회계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수학, 미적분이 회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멜라인 주커만·18·뉴욕 브롱크스 과학고 3학년)

“올해 JA가 주최했던 대규모 행사에서 대형 통신회사인 버라이존에서 온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는데, 그분과 이야기도 하고 경제교육을 받으면서 재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아직 진로를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재무 분야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해요.”(보리스 매나키모프·16·뉴욕 존듀이고교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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