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프랑스 정치권에 좌파가 득세하게 되자 노동조합은 이런 환경을 자신들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한다. 노동조합은 기업을 상대하기보다 정치권을 상대로 압박하는 전략을 취한다. 불과 몇 명만 모여도 노조를 조직할 수 있고 또 파업을 벌일 수 있게 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직장이 없어도 취업근로자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각종 수혜가 사회안전망으로 제공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시스템은 결과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수를 줄여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프랑스인의 평균 은퇴연령은 60세가 채 못 된다. 기업은 사람을 고용할 때마다 높은 사회보장세를 물어야 한다. 게다가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하니 채용 자체를 기피하게 되었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정치권이 모를 리 없었다. 몇 차례 개혁입법을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기득권 옹호 파업에 물러나고 말았다. 오히려 근로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서로 나누어 가지자는 노동조합의 달콤한 제안에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35시간으로 줄이는 입법을 하게 되었다. 결과는 오히려 실업률의 상승이었다.
일을 안 하는데 경제가 좋아질 리 있는가. 2000년 이후 경제성장률은 1%대에 머물고 실업률은 10%가 넘었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24%에 이르고 있다. 대공황 때의 실업률 수준이다. 작년 가을 파리 교외에서 일어난 이슬람교도 청년들의 폭동의 밑바닥엔 일자리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근로시간을 늘리든지,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든지, 은퇴 연령을 높이든지, 사회보장 수혜를 줄이든지 뭔가 개혁이 필요했다.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는 26세 미만 청년들의 고용을 초기 2년간 유연화(해고 가능)하는 입법을 택하였다. “기업이 종신고용의 부담 없이 일단 채용해 2년간 써본 후 판단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법은 ‘전 연령층의 고용구조를 유연화해야 한다’는 본질적 해법에 못 미칠 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일회용이냐”는 감정적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사태의 교훈은 한마디로 경제적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정치적 약속은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드빌팽 총리는 지금 프랑스 젊은이들보다는, 수십 년간 악법을 만들어 온 선배 정치인들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혹시 프랑스의 전철을 밟고 있지 않은지. 노동조합은 기업을 상대하기보다 정치권을 압박하여 각종 입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정치권은 그럴듯한 사회보장책을 내놓기만 하고 책임은 다음 세대에 미루고 있다. 국민연금 문제가 단적인 예이다. 기업은 경직된 노동법으로 인해 채용을 기피하고 청년들은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프랑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노동조합이나 정치권 모두 경제현실에 입각한 법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일자리가 생겨나려면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세금을 더 거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여야 열심히 일한다. 또 노동시장 유연화는 더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여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좋은 정책이다. 미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이 이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지 않았는가.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노동조합은 벌써부터 총파업으로 위협하며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정치인은 눈치 살피지 말고 노조를 설득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 주기 바란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경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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