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이 전하는 ‘뉴스 뒤 뉴스’…에따 모스크바

  • 입력 2006년 4월 10일 03시 00분


《워싱턴, 뉴욕, 도쿄, 베이징, 모스크바, 파리에 나가 있는 특파원들의 ‘뉴스 플러스’를 고정 연재합니다. 세계 주요 도시의 ‘뉴스 뒤 뉴스’에 특파원들의 ‘손맛’을 담아 독자들이 잠깐이나마 지상(紙上)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워싱턴은 ‘워싱턴은 지금’, 뉴욕은 ‘뉴욕 & 뉴요커’, 도쿄는 ‘인사이드 도쿄’, 베이징은 ‘니하오 베이징’, 모스크바는 ‘에따 모스크바’, 파리는 ‘파리의 지붕밑’이라는 문패를 달게 됩니다. 》

8일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크라스노아르메이스크(붉은 군대) 거리. 쌀쌀한 날씨에도 손에 꽃을 든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6일 새벽(현지 시간) 총격으로 숨진 세네갈 유학생 란자르 삼바(28) 씨를 추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교통대에 다니던 삼바 씨는 동료 유학생들과 인근의 디스코텍에서 나오다 변을 당했다. 현지 경찰은 사건현장 근처에서 나치 상징 마크가 그려진 공기총을 발견했다. 외국인과 비(非)러시아계 소수민족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일삼고 있는 신나치주의자들의 소행이 확실해진 것.

검은 가죽 옷과 군화 차림에 머리를 완전히 삭발해 보통 ‘스킨헤드’로 불리는 신나치주의자들에 의한 희생자는 올해 들어 삼바 씨가 12번째. 지난해에도 28명이 피살됐다.

스킨헤드 조직은 최근 자신들의 인터넷 사이트에 ‘외국인을 사냥하는 방법’까지 올렸다. 외국인을 폭행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러시아 전역의 외국인과 소수민족을 모두 죽여 버리자는 극단적 주장을 펴고 나선 것이다.

삼바 씨 사건에서 처음으로 총기가 사용됐다. 옛 소련 붕괴 후 경찰력이 약해진 러시아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총기를 구할 수 있다. 스킨헤드들이 외국인에게 총기를 난사하는 대참사가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을 보여 준 것.

러시아 스킨헤드는 어린이와 여성, 노인 등 범행 대상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잔혹하다. 지난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9세 소녀가 칼로 난자당해 중상을 입었고 모스크바에서는 71세 쿠바 노인이 스킨헤드 청년들에게 몰매를 맞고 죽었다.

이들의 범행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을 정도로 대담하다. 1월 10여 명의 스킨헤드 청년이 모스크바 중심가의 유대인 교회에 난입해 신도들을 닥치는 대로 칼로 찌르는 사건도 있었다.

스킨헤드가 이처럼 기승을 부리는 것은 당국에 붙잡히는 경우가 거의 없고 체포돼도 ‘솜방망이 처벌’만 받기 때문이다. 2004년 2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스킨헤드 8명이 타지크인 가족을 공격해 9세 소녀가 무려 11군데나 칼에 찔려 숨졌다. 들끓는 여론 속에 러시아 경찰은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수사를 벌여 범인 8명을 잡았다.

하지만 최근 이 사건 공판에서 러시아 법원은 단순폭행 혐의를 적용해 주범에게는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하고 나머지 7명에게는 징역 18개월을 선고했다.

5만 명으로 추산되는 스킨헤드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 정부가 최근 교민이 700여 명밖에 없는 이 도시에 서둘러 총영사관을 설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스킨헤드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시기는 4월이다. 나치독일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생일(20일)이 있기 때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2000만 명이 희생됐고 지난해에는 50개국 정상을 불러 화려한 승전기념식까지 했던 러시아에서 정작 신나치주의가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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