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든대를 찾은 방문객들은 남쪽 실즈 도로 입구에서 학교의 상징인 소나무가 무더기로 베어져 나가는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재학생은 물론이고 동문들은 이 소식에 분노했다. 지역 언론은 쓰러진 나무 옆에서 시위하는 학생들의 사진과 함께 “어떻게 보우든대가 살아 숨쉬는 전통을 쓰러뜨릴 수 있느냐”고 보도했다.
나무를 베어 낸 이유는 신축 과학관 건물의 주차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은 보우든대 설립자들은 200년 전 ‘급전(急錢)’ 마련용 자원으로 생각해 소나무를 심었다. 이 소나무가 ‘전통’의 출발이 아니었던 것이다.
보우든대는 그런 곳이다. 메인 주 포틀랜드 공항에서 295번 도로를 타고 자동차로 20분 남짓 북쪽으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인구 2만 명의 소도시 브런즈윅의 한적한 분위기에서 그런 일은 ‘사건’이 될 만했다.
7일 찾은 보우든대는 학교 건물 높이보다 더 높게 솟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미국 동북부 끝자락에 위치해 4월임에도 기온이 섭씨 0도에 가까울 정도로 쌀쌀했다.
어쨌든 그 ‘사건’은 2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보우든대가 한편으로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더 좋은 대학을 만들기 위해 그 전통의 굴레를 뛰어넘는 결단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보우든대에서 위기는 항상 개혁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말 우수한 학생들을 애머스트, 윌리엄스, 웨슬리언대 등 경쟁 대학에 빼앗기고 있다는 위기감이 몰아닥치자 입학준비위원회는 1968년 남녀공학을 실시하고 흑인 학생들을 유치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마련했다. 학교의 입학 시스템뿐 아니라 학부 문화를 완전히 뜯어고치자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 대학은 1970년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을 다소 파격적으로 도입했다. 단순히 시험성적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학교 입학심사위원회가 마련한 기준표에 따라 직접 학생의 구술 능력과 수학적 지식 등을 테스트했다. 중고교 시절 탄탄한 실력을 쌓아 두지 않았으면 통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입시제도라는 비판의 목소리는 우수학생 유치라는 목적 앞에서 수그러들었다.
1971년에는 남녀공학으로 새로 태어났다. 950명에 이르던 학생 수도 1400명으로 급격히 늘렸다.
당시 급격한 세대교체와 베트남전쟁 영향으로 도시의 복잡함에 환멸을 느낀 젊은 세대들이 자유와 새로운 환경을 찾아 보우든대로 몰려들었다.
“남성 중심적이고 보수적이던 동문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 같은 개혁은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내다본 것이었다.”(스콧 후드 대외협력처 부처장)
우수한 학생을 뽑은 뒤 이들을 ‘단련’하는 것은 교수진의 몫이다. ‘인디펜던트 스터디(독립연구)’와 ‘명예 프로젝트(honors project)’라는 독특한 교육법은 이 대학을 인문학 대학 순위에서 상위 랭킹에 붙잡아 두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독립연구’란 학생들이 전공 수업의 틀을 뛰어넘어 스스로 과제를 만들어 교수와 1 대 1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미술사학과 4학년 이승아(李昇雅·여·25) 씨는 이번 학기에 ‘청자 연구’라는 독립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계획서를 담당 교수에게 제출해 허락을 받은 이 씨는 1주일에 한 번씩 연구진행 성과에 대한 리포트를 제출하고, 교수를 만나 지도를 받는다. 학기 말에 종합 리포트를 작성해 제출하면 학점으로 인정된다.
리포트 제출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인디펜던트 스터디를 연장해 다음 학기까지 1년간 연구를 지속하면 명예 프로젝트로 발전한다. 100여 쪽에 이르는 논문을 제출하면 학교에서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평가를 한다. 여기를 통과하면 일반 졸업장 외에 ‘명예졸업’이란 영광을 하나 더 안는다.
교수와 학생 간의 친밀한 관계는 대학 생활의 중심축이다.
교수는 시험시간에 학생이 보이지 않으면 기숙사로 전화를 걸어 채근할 정도다.
볼드윈센터는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과 멘터(조언자)를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센터의 엘리자베스 반하트 소장은 “30여 명의 멘터는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 과목에 대해 지속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전형적인 인문학 대학답게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독서량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학생들 간의 경쟁은 그다지 심하지 않은 편이다.
수학과 심리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는 제이미 버우드(2학년) 씨는 “교수뿐 아니라 동료들도 학업을 도와주기 때문에 원하는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면학 분위기와 안전한 치안 환경 덕분에 보우든대는 미국에서 입시 경쟁이 아주 치열한 학교의 하나로 떠올랐다. 지난해 국내외에서 5026명이 지원해 478명이 합격했다.
브런스윅=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보우든이 배출한 인물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국대사(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왼쪽)가 7일 모교인 보우든대에서 강연을 마친 뒤 한국유학생 김지수 씨(경제학 3년·오른쪽) 와 대화하고 있다. 가운데는 배리 밀스 학장. 사진 제공 보우든대 대학신문 오리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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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우든대는 미국 건국 직후 사회를 이끈 지도자를 양성한 명문이었다. 이 대학은 공익을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설립 취지와 함께 시대를 이끌었던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 전통을 만들어 왔다.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인 조슈아 로런스 체임벌린(1852년 졸업)은 게티즈버그 전투의 승리를 이끈 인물이다. 보우든대 후배들은 그의 전투 경력보다는, 패배한 남군을 처벌하지 말고 존중하라고 명령한 대목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 같은 명령은 남북전쟁 이후 남부와 북부가 화해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도덕적인 지도자’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보우든대의 전통을 가장 잘 구현한 인물이기도 하다.
프랭클린 피어스 14대 대통령, 멜빌 풀러 연방대법원 판사, 토머스 리드 하원의장을 비롯한 3부 요인들도 보우든대의 자랑거리.
‘주홍글씨’로 유명한 너대니얼 호손과 국민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도 이 대학 출신이다.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는 학교 클럽 배지를 달고 1909년 세계 최초로 북극을 정복했다. 피어리의 북극 정복 이후 북극곰은 이 대학의 마스코트가 됐다.
조순(趙淳) 전 서울시장도 이 대학 출신이다. 보우든대의 소개 책자는 그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우든대를 빛낸 지도자의 한 명으로 기술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도 이곳을 졸업했다. 6일 ‘동아시아 정세’를 주제로 모교에서 강연회를 가진 그는 라크로스 경기에 흠뻑 빠졌던 대학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보우든대 동문들의 유형무형의 후원은 후배들에게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브런즈윅=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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