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이민법안의 방향을 둘러싸고 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10일 12개 도시에서 불법이민자 합법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이민자들의 존엄을 위한 행동의 날’로 이름 붙여진 이날 시위에는 모두 200만 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워싱턴 의사당 및 백악관 앞 잔디공원(The Mall)에는 수만 명의 시위대가 하얀 티셔츠를 입고 “우리도 미국인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 장소는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 1970년대 베트남전 반전시위가 벌어졌던 바로 그곳이었다.
에드워드 케네디 민주당 상원의원이 집회에 참석해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외치기도 했다. 불법 체류자인 듯 영어를 전혀 못하는 시위 참가자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몇 주째 미 전역에서 계속되는 시위가 언론의 주목과 함께 탄력을 받자 시위대 사이에서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버지니아 주 패어팩스 지역에서 임시 순회교사를 맡고 있는 볼리비아 출신의 마르셀라 아르다야(28) 씨는 “지구는 모두의 땅인데, 외국인이라고 미국 땅에서 쫓겨나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멕시코 출신 유학생으로 입국한 뒤 시카고의 한 교회에서 사회운동을 하는 아르날드 마르티네스(34) 씨는 “불법 입국이 문제란 건 알지만, 멕시코에선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없다. 아버지로서 미국행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친척 20여 명이 미국에 왔다”며 “멕시코 정부엔 기대할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미국은 우리가 필요하지 않느냐. 그걸 인정하고 합법화하라” “인간적으로 수모가 많고, 돈도 (다른 미국인보다) 형편없이 적게 받는다”고 외쳤다. 실제로 저임금 불법 체류자를 필요로 하면서도 반이민법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것이었다.
미 상원은 2주간의 부활절 휴회를 마친 뒤 24일부터 이민법안 심의를 재개한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