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피랍 여객기 테러범-승객들 조종실 쟁탈전…녹음공개

  • 입력 2006년 4월 14일 03시 00분


“신사 숙녀 여러분, 기장입니다. 기내에 폭탄이 실려 있습니다. 착석하십시오.”

2001년 9월 11일 오전 9시 32분 기장으로 가장한 납치범의 긴급 안내방송으로 시작된 유나이티드항공(UA) 93기의 처절했던 ‘최후의 31분’이 생생하게 기록된 녹음테이프가 12일 공개됐다.

9·11테러 당시 네 번째로 납치된 UA 93기는 승객들이 비행기를 탈환하기 위해 4명의 납치범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추락했다. 승객과 승무원 40명이 모두 숨졌다.

이날 미국 연방법원에서 열린 알 카에다 조직원 자카리아스 무사위에 대한 배심원 선고공판 과정에서 공개된 녹음테이프는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보여 주었다.

오전 8시 42분 뉴저지 주 뉴어크 공항을 이륙한 UA 93기가 테러범들에게 납치된 것은 약 46분 뒤. 몇 분 동안 “꼼짝 마” “닥쳐” “앉아” 등 테러범들의 협박과 함께 승무원들의 비명과 “살려 달라”는 애원이 뒤섞여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테러범들 사이에 이해하기 어렵거나 잘 들리지 않는 말이 오가던 9시 57분경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한 납치범이 “싸움이 났느냐”고 묻자 “그렇다”는 답변이 나왔다.

잠시 후 한 납치범이 “그들이 (조종실로) 들어오려고 한다”고 말하자 다른 납치범이 “못 들어오게 문을 잡아”라는 등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다시 한 납치범이 “여기서 끝장낼까”라고 말했고, 다른 납치범은 “아직은 아니다. 그들이 모두 들어오면 끝내자”라고 말했다.

10시경 한 승객이 “조종실 안으로, 우리가 못하면 우린 죽어”라고 말한 뒤 “행동 개시”라고 외쳤다. 승객들이 음식 카트로 조종실 문을 밀고 들어오려 하자 테러범 쪽에서 “산소 공급을 끊어”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승객과 납치범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계속하는 가운데 조종간을 잡은 테러범은 항공기를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이어 “아래로 내려”, “나에게 맡겨” 등 고함이 터져 나온 뒤 비행기는 급강하했다.

10시 3분경 테러범들이 “알라는 가장 위대하다”고 계속 외쳐댄 지 몇 초 지나지 않아 테이프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당초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던 UA 93기를 납치한 테러범들은 항공기를 워싱턴으로 몰고 가 백악관이나 의회 건물에 충돌시키려고 했던 것으로 9·11테러 조사위원회는 보고 있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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