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국가주석이 된 뒤의 첫 방미(訪美)임에도 후 주석은 정상 만찬 대신 정상 오찬만 하게 된다. 화려한 연미복 차림에 미사여구의 환영사, 우아한 건배 같은 ‘화면’은 없다. 체면을 중시하는 13억 중국인에게 미국에서 대접받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인 학자의 입을 빌려 “부시 대통령은 중국이 너무 좋아하는 꼴을 보기 싫은 것”이라고 했다.
▷이들 정상에게 양국 관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국내 여론이다. 더구나 이번 회담은 세계의 헤게모니를 쥔 미국과 언제 그 자리를 차지할지 모르는 ‘떠오르는 중국’이 관계를 정립하는 자리다. 공교롭게도 두 정상 다 국내 사정이 편치 못하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부시 대통령은 ‘중국에 일자리를 뺏긴다’고 믿는 유권자를 달래야 하고, 내년에 새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치러야 하는 후 주석 역시 부시와 맞먹는 리더십을 과시해야 한다.
▷독일이나 일본 등 한때 ‘떠올랐던 국가’들은 국내 세력을 결집해 경제성장으로 일어선 뒤 결국 전쟁을 일으키는 코스를 밟았다. 중국이 화평굴기(和平굴起·평화롭게 일어서기)를 강조해도 미국이 경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행히 두 나라는 경제라는 ‘목줄’로 긴밀하게 엮여 있다는 것을 피차 안다. 미소(美蘇)가 핵을 너무나 잘 알기에 핵전쟁을 피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국빈방문이든 아니든 이번 회담 결과가 21세기 세계질서를 좌우할 수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