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 청년을 기다린 건 ‘추방 명령’

  • 입력 2006년 4월 19일 03시 02분


뉴욕 임시보호소를 전전하던 9세 소년 다넬 파디야(사진) 군. 마약 거래에 뛰어들던 또래들과는 달리 그의 손에는 소크라테스 전기가 들려 있었다. 10대에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읽고 라틴어와 프랑스어까지 통달했다. 그는 고전학을 전공하는 21세의 프린스턴대 최고 우등생으로 성장했다. 주임 교수는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고전학자가 될 것”이라며 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둔 그에게는 미래가 없다. 취직도 대학원 진학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조만간 미국 땅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4세 때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불법이민자이기 때문. 파디야 군처럼 매년 불법이민자 신분으로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가 1만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불법이민 규제 때문에 갈 곳 없는 딱한 신세가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5일 보도했다.

불법이민 학생의 고민은 대학 진학 때부터 시작된다. 무상 교육이 제공되는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학비를 마련할 수 없어 불법이민 학생의 90% 이상이 대학 진학을 포기한다. 파디야 군과 같은 영재 학생의 경우 대학 측이 불법이민을 눈감아 주고 장학금을 주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프린스턴대는 파디야 군의 처지를 알았지만 매년 학업성적 1등을 도맡아 하는 그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파디야 군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은 지난달 영국 옥스퍼드대의 전액 장학금 유학생으로 선발되면서부터. 그는 불법이민자 신분이기 때문에 미국 땅을 떠나면 다시는 입국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고민 끝에 미 이민국에 불법이민 사실을 자진 신고한 뒤 유학생 비자를 발급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최근 그에겐 조만간 추방 절차를 시작하겠다는 통보까지 날아왔다.

2001년 미 의회에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 이상 거주한 불법이민 학생에게 영주권을 부여하거나 최소한의 재정적 보조를 해 주는 법안이 상정됐지만 대다수 의원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현재와 같이 반이민 정서가 강한 상황에선 이런 법안은 상정되기조차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프린스턴대 학생들은 파디야 군의 딱한 처지를 돕기 위한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에게 영주권을 주기 위해 결혼해 주겠다는 여학생들의 제의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파디야 군은 결혼 제의는 거절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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