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책과 강연에서 “승리하라. 기업이 승리하면 많은 일자리와 기회가 생긴다. 승리는 단순히 좋은 것이 아니라 위대하다”고 되풀이했다.
이 건물은 투자사업가 ‘존 사이먼’, 강의실은 ‘에머슨 일렉트릭’, 강당은 ‘메이 백화점’이 기부한 돈으로 만든 것이다. 건물은 물론이고 강의실과 강당까지 모두 기증자나 기업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워싱턴대는 기업과 동문들의 막대한 기부금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대학이다. 캠퍼스에 있는 건물들은 본관 건물인 브루킹스 홀을 비롯해 대부분이 기부자의 이름으로 불려 무슨 건물인지를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1905년 문을 연 현재의 캠퍼스는 1904년 세계박람회와 하계올림픽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브루킹스 홀의 동쪽 정면으로 캠퍼스와 연결돼 있는 도시형 공원인 포리스트파크의 규모는 155만 평. 뉴욕의 센트럴파크보다 53만 평이나 크다.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대학은 50년 전만 해도 학생의 90%가 세인트루이스 출신인 지방대학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재학생 1만767명 가운데 세인트루이스를 포함한 전체 미주리 주 출신은 15%에 불과하다. 외국 학생이 85개국의 1300명이나 된다. 120개국에서 온 연구원과 박사 후 과정 학생 및 방문교수도 1200여 명이나 돼 국제화 수준도 상당하다.
이 대학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의 종합대학 랭킹에서 2004년 9위, 2005년과 2006년 11위를 기록해 가장 주목받는 대학으로 발전했다. 10년 전만 해도 20위권의 대학이었다. 랭킹 11위는 아이비리그의 코넬대(13위)와 브라운대(15위)보다 앞서는 것.
특히 의대는 하버드대, 존스홉킨스대, 펜실베이니아대에 이어 4위로 평가될 정도로 유명하다. 의학 생리학 부문을 중심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22명이나 배출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이름이 들어간 다른 대학으로는 수도 워싱턴의 조지 워싱턴대와 워싱턴 주 시애틀의 워싱턴대(University of Washington)가 있다. 이 때문에 혼동하는 사람이 많아 1976년부터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를 대학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대학은 1958년부터 7년 동안 고려대와 연세대에 10여 명의 교수를 1년 또는 1년 반씩 파견해 경영대학의 발전을 지원한 ‘경험’이 있다.
“국제협력처(ICA)의 의뢰로 한국의 대표적인 사립대의 경영대학 커리큘럼을 개선하고 교수법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워싱턴대가 수행한 것이다.”(로버트 버질 전 경영대학장)
같은 기간에 이 대학 경영대학원에는 고려대생과 연세대생 25명이 장학금을 받고 유학했다. 25명 중 8명이 석사나 박사학위를 받았다. 8명 중 이준범(李準範) 전 고려대 총장과 송자(宋梓) 전 연세대 총장이 포함돼 있다.
이 대학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1970년부터 25년 동안 재임한 윌리엄 댄포스 총장과 후임자인 마크 라이턴 현 총장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대학이 1992년부터 2004년까지 네 차례(1996년은 유치 후 취소됨)나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유치한 것은 낮은 지명도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무관치 않다.
특히 10만5000여 명의 졸업생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매년 기부금을 낼 정도로 동문들이 자원봉사와 기부에 적극적이다.
원금은 손대지 않고 수익금만 사용하는 이 대학의 기금은 무려 43억 달러로 미국 대학 가운데 8위에 해당한다. 연간 기부금 수입이 1500만 달러나 된다.
이 같은 규모의 기금은 아이비리그 수준이다. 물론 하버드대(255억 달러)나 예일대(152억 달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코넬대(38억 달러)나 다트머스대(27억 달러), 브라운대(20억 달러)보다 많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가정형편에 따라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과 달리 이 대학은 성적 우수자에게 장학금을 줌으로써 성적 우수자를 유인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모금성공 비결은 철저한 준비와 비전 제시”▼
마크 라이턴(57·사진) 워싱턴대 총장은 취임 이듬해인 1996년 10년 동안 10억 달러 모금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그는 8년 만에 목표액을 초과 달성했다.
라이턴 총장은 성공적인 모금 비결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세운 뒤 다양한 분야에 필요한 돈을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동시에 모은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철저한 준비로 대상을 ‘공략’했고 그의 비전에 공감한 기업과 동문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는 얘기다.
그의 재임 중에 새로 생긴 건물만도 25개나 된다.
23세에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교수와 학과장을 거쳐 5년 동안 부총장(Provost)까지 지냈다. 그 후 46세에 이 대학 총장으로 스카우트됐다.
그의 연봉은 60만 달러로 조지 W 부시 대통령보다 20만 달러나 많다. 하지만 일반 교수 연구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집무실에서 만난 라이턴 총장은 모금 캠페인 구호가 적힌 머그잔에 손수 커피를 따라 마셨다.
“기부금으로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원해 우수한 학생과 훌륭한 교수들을 확보하고 학교 시설도 확충했다.”
‘기부금’ 총장이 들려주는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대학혁신’ 비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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