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요커]납북자 송환 한맺힌 절규 맨해튼 거리 울려퍼지다

  • 입력 2006년 4월 27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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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앞에서는 납북자 송환을 요구하는 ‘한국인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납북자단체 대표들은 이날 납북자 명단을 전달하려 했으나 북한대표부 측은 ‘휴일’임을 들어 접촉을 피했다. 이날은 북한의 조선인민군 창건 기념일이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25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앞에서는 납북자 송환을 요구하는 ‘한국인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납북자단체 대표들은 이날 납북자 명단을 전달하려 했으나 북한대표부 측은 ‘휴일’임을 들어 접촉을 피했다. 이날은 북한의 조선인민군 창건 기념일이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25일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 근처인 44번가(街) 선상의 외교센터 건물 앞 도로.

평소에는 한가롭기 그지없는 이곳에서 이날 오전 10시 반부터 때 아닌 ‘한국인들의 함성’이 이어졌다. 외교센터 13층에 입주해 있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를 향한 외침이었다.

“김정일 정권은 납북자를 송환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라.”

“김정일 정권은 납북자 명단을 바탕으로 납북자 생사 확인 및 송환을 위한 협상에 적극 응하라.”

이날 북한대표부 앞에서 납북자 송환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가한 사람은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사무총장, 납북됐다 탈북한 이재근, 진정팔, 김병도, 고명섭 씨 등이었다. 납북됐다가 탈북한 4명은 모두 어부 출신. 최근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탈북자 출신 마영애 씨도 합류했다.

참석자들은 처음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서한과 483명에 이르는 납북자 명단을 북한대표부에 전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북한대표부 측은 “오늘은 휴일이기 때문에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며 아예 접수를 거부했다.

결국 이들은 건물 밖으로 나와 북한 측에 납북자 송환을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귀환 어부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이재근 씨는 “조업하다 강제로 납치된 뒤 30년 동안을 어둠 속에서 살았다. 억울하다. 눈앞에 보이기만 하면 주먹이 먼저 나갈 것 같다. 누가 내 잃어버린 삶을 보상해 주느냐”고 외쳤다.

진정필 씨는 “멀쩡한 사람을 제멋대로 납치해 간첩교육을 시키고, 나쁜 놈들…”이라며 분노에 목이 메어 채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할 예정인 고명섭 씨는 “감시와 억압 속에서 30년을 살아왔다. 북한에 남아있는 동료 납북자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잠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명단을 전달하지 못했다는 점에 답답해했다. 서해 덕적도에서 1973년 납북된 뒤 2003년 탈출에 성공한 김병도 씨는 “그래도 한 가닥 기대를 걸고 뉴욕까지 왔는데, 이렇게 명단도 전달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돼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북한 측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함에 따라 이들은 우편을 통해 서한과 납북자 명단을 북한대표부에 보내기로 했다.

최성용 대표는 “3년 전 이곳에 왔을 때에는 그래도 전화통화까지는 됐었는데 이번에는 북한대표부가 아예 전화접촉도 피하고 있다”며 “미국 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뉴욕은 며칠째 계속 내리던 비까지 그치면서 구름 한점 없는 찬란한 봄 날씨가 이어졌다. 센트럴파크 등 시내 곳곳에는 따스한 햇볕을 받으면서 산책하거나 커피를 즐기는 뉴요커들이 이날 따라 유달리 많이 눈에 띄었다.

지나가던 뉴요커들은 ‘낯선 동양인들의 시위’에 대해 묻기도 했다. 한 뉴요커는 설명을 들은 뒤 “아직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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