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상회담 장소가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수도 모스크바나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닌 톰스크이기 때문이다. 시베리아에 있는 인구 50만 명의 소도시다.
정상회담과 함께 러-독 경제포럼도 열리고 있다. 양국 경제부처 장관 및 독일의 바스프와 지멘스, 러시아의 가스공사(가스프롬)와 철도공사 같은 대기업 경영진 수백 명이 참석했다.
두 정상을 비롯한 양국 고위인사들이 굳이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4시간이나 걸리는 톰스크에서 모인 이유는 뭘까?
표면적으로는 과학기술과 시베리아 자원 개발의 중심지인 이 도시가 에너지와 과학기술 분야 협력을 논의하기에 적당한 장소라는 것이다. 톰스크는 옛 소련 시절부터 핵과 우주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비밀연구소들이 모인 과학도시였다. 또 인근에 유전과 가스전이 많다.
하지만 알고 보면 톰스크는 양국 간의 불편한 과거사를 상징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1만5000여 명의 독일계가 살고 있다. 독-소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당시 소련 지도자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서부 지역에 살고 있던 독일인들을 이곳으로 강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소련은 우수한 독일계 인력을 시베리아 개발에 활용했다. 빅토르 크레스 현 톰스크 주지사부터 독일계다. 그의 부모도 1940년대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왔다.
하지만 소련 붕괴 후 독일은 오히려 이곳을 시베리아 진출의 거점으로 삼아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 중 시간을 내서 독일계 주민들을 만났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불행했던 60여 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다시 꺼내기보다는 ‘미래의 땅’인 시베리아에서의 협력을 다짐하는 데 초점을 뒀다.
러시아와 독일의 과거사를 한국-일본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의 ‘톰스크 회동’을 보면서 과거사를 헤쳐 나가는 지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역시 지도자의 몫이 크다.
김기현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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