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을 지나 10여 분 정도 걸어가면 한복판에 거대한 인공호수가 모습을 드러내고 건너편으로는 잔디 축구장이 보였다. 캠퍼스 안에서 학생들이 북적대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삼삼오오 부지런히 어디론가 이동하는 모습만이 눈에 띄었다.
지난달 초 중국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저장(浙江) 성 항저우(杭州)에 위치한 저장(浙江)대통합캠퍼스를 찾아갔다. 65만 평 규모의 통합캠퍼스로 한국의 웬만한 작은 신도시와 비슷한 크기다. 앞으로 이 대학은 현재 규모의 2.5배에 이르는 캠퍼스를 추가로 건설한다고 한다.》
세계 명문대와 경쟁위해 통합 선택
○ 중국 대학개혁의 상징 ‘저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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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한 개의 대학이던 저장대는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4개의 대학으로 쪼개졌다. 공산당이 종합대학을 단과대별로 분리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세계적인 대학들과의 경쟁을 위해서는 규모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다시 통합이 시작된 것이다.
저장대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통폐합에 성공한 가장 큰 요인은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리더십 덕이다. 국가가 임명한 총장은 철저히 교육부의 큰 틀에서 개혁을 진행했다.
정부는 저장대 합병의 조건으로 약 8억 위안(약 1000억 원)을 제시했다. 또 저장 성 지방정부는 8500무(약 185만 평)의 땅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 대학 교육학원(사범대학) 쉬샤오저우(徐小洲) 교수는 “저장대 통합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정부의 채찍과 당근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자리 보장해 교수 구조조정 성공
○ 통폐합의 명과 암
저장대는 중국 교육부의 지난해 공식통계에서 베이징대와 칭화대에 이어 3위에 랭크됐다. 이 대학의 한국인 유학생인 최미순(20·무역학과) 씨는 “통합 이후 학교의 인기가 급상승해 중국 최고의 학생들이 몰려오고 있다”며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통폐합의 시너지 효과는 ‘1+1+1+1=4+α’로 돌아왔다.
1998년 통합 이후 과학연구 분야의 총경비는 매년 증가해 2005년 11억3000위안에 달하는 등 국가자연과학기금은 전국 2위에 이르렀다. 과학논문색인인용(SCI) 수록 논문 수는 2004년에 이미 전국대학 2위에, 특허등록은 전국 대학 중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통폐합 과정에서 반대나 갈등도 많았다. 최고의 교수진을 요구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졌던 농대 의대 대학교수들은 자신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통합에 반대했다.
쉬 교수는 “통합과정에서 정부는 교수들을 무조건 내보내지는 않았다”며 “링포이 공학원 등과 같이 저장대 소속의 직업 학원을 항저우 시 정부와 함께 설립해 퇴출된 교수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항저우=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교수진 경쟁원리 도입 월급 수천배 차등 계획
○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통합만으로 저장대의 개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일단 통합 이후 학교의 모든 지표는 커졌지만 질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학의 한 관계자는 “저장성 지역의 학생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저장대만을 선택하게 됐다”며 “이는 결국 주변에 경쟁상대가 없어졌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저장대는 이제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의 발전단계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외형의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인적 쇄신의 과제는 가장 큰 고민거리. 여전히 교수 중 상당수가 박사학위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에 교수사회에 적극적인 경쟁원리를 도입하면서 월급도 작게는 한국 돈 50만∼60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도록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초빙교수로 와 있는 저장대 박인성(朴寅星·토지관리학과) 교수는 “구축한 인프라에 비해 행정시스템과 인적 구성의 낙후성은 중국대학이 해결해야 할 큰 과제”라며 “중국대학의 개혁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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