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히스패닉 없으면 패닉?…美인구 14%

  • 입력 2006년 5월 3일 03시 01분


‘이민자 없는 날(Day without an immigrant).’

노동절인 1일 미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대규모 반(反)이민법 시위 및 총파업의 모토다. 이는 미국 경제에서 이민자들이 차지하는 영향력을 보여 주기 위한 전략.

시위 주최 측이 이날 하루를 ‘이민자 없는 날’로 선포함에 따라 히스패닉계 이민 노동자들의 파업이 미 전역에서 단행됐다. 로스앤젤레스의 50만 명을 포함해 미국 70여개 도시에서 수백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그렇다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히스패닉 파워’는 얼마나 될까. 이날 파업은 미국 경제 전반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파업이 하루에 그쳤던 데다 히스패닉 노동자들이 모두 파업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육 요식 농업 등 히스패닉이 많이 일하고 있는 업종은 이날 파업 때문에 휴무를 하는 등 영업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타이슨푸드와 카길푸드 등 대형 식품회사들은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히스패닉을 많이 고용하는 상당수 한인 교포도 이날 아예 가게 문을 닫았다. 히스패닉 인구 비중이 40%가 넘는 로스앤젤레스는 도심 가게의 3분의 1이 영업을 중단했다.

히스패닉 노동력이 없다면 미국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 준 하루였다.

이 같은 ‘히스패닉 파워’의 뿌리는 미국 내에서 급증하는 히스패닉 인구. 미국 통계국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히스패닉은 미국 전체 인구 2억9370만 명의 14%인 4130만 명.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인 히스패닉은 피임과 낙태를 꺼리기 때문에 출산율도 높다. 2030년에는 히스패닉 인구가 미국 인구 3억6400만 명의 20%인 720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히스패닉은 미국에서 ‘인구혁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스패닉 비중이 커지면서 기업들도 이제 소비자로서 히스패닉에 주목하고 있다. 2003년 기준으로 히스패닉의 중간 소득은 연 3만3103달러로 미국 전체 평균인 4만3318달러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그러나 마케팅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히스패닉의 연령 분포와 소비 성향이다. 히스패닉은 중간 연령이 27세로 미국 전체 평균 35세에 비해 8세나 어리다. 이는 소비 성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히스패닉은 세전(稅前)소득의 93%를 소비한다. 미국 전체 기준은 82%. 11%포인트나 높다.

2004년 기준으로 히스패닉의 구매력은 7000억 달러로 추산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보다도 많다. 2010년에는 히스패닉의 구매력이 1조 달러까지 증가해 미국 전체 구매력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자동차 미국법인도 히스패닉이 열광하는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올해 히스패닉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강화한다는 방침. 미국시장에서 히스패닉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7.2%이지만 올해 마케팅 예산의 10%를 히스패닉 대상으로 돌린다는 방침이다.

프록터앤드갬블(P&G)처럼 히스패닉 고객이 많은 생활용품 회사들은 아예 광고를 스페인어로 제작해 방송하고 있다.

이처럼 히스패닉 파워가 커지다 보니 스페인어를 배우는 미국인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 스페인어는 이미 공항 지하철 등에 반드시 영어와 병기되는 ‘제2국어’로 통용될 정도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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