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크엔드]캐릭터 인형에 빠진 日남자들

일본 도쿄 시부야의 명물이 된 피겨 숍 ‘블리스터’. 영화나 만화의 캐릭터 인형을 파는 이곳의 매장에서는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 ‘헬 보이’ ‘스파이더 맨’ ‘루크’ ‘다스베이더’ 등 영화 캐릭터들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 제공 장혁진 씨

《최근 일본 도쿄의 남성들 사이에 자주 거론되는 화제가 있다. ‘젊은이의 거리’로 불리는 시부야(澁谷) 한복판에 최근 문을 연 한 상점에 관한 이야기다. 이곳은 ‘피겨(figure·캐릭터 인형)’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캐릭터 상점 ‘블리스터’다.

일본에서 피겨는 영화 만화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를 축소해 만든 인형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 캐릭터와 구분할 수 없을만큼 정교하고, 관절이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어 여느 장난감이나 인형과 크게 다르다. 피겨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성인들끼리 장난감 가게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것도 납득할 만하다.》

블리스터는 시부야 번화가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선명한 오렌지색 건물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 차지하고 있다. 블리스터는 2002년 도쿄 하라주쿠(原宿)에서 처음 문을 열고 ‘US토이(미국산 장난감)’를 주요 상품으로 취급해 왔으며 최근 시부야로 이전했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피겨는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악당 ‘다스베이더’다. 영화에서 나온 다스베이더를 재현한 것으로 가까이 가서 보면 막 움직일 듯 생생하다. 매장은 흰색과 오렌지색 디스플레이로 밝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고, 오렌지색 셔츠를 입은 ‘얼짱’ 남녀 점원들이 손님을 맞는다.

일본에서 피겨는 ‘오타쿠(마니아) 문화’라는 인식이 짙다. 그래서 매장이 밝고 신세대 점원을 배치해 대중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점이 뜻밖이다.

블리스터는 3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지하 1층에는 미국산 만화책과 슈퍼맨 등으로 상징되는 ‘슈퍼 히어로’를 모델로 한 상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애니메이션 왕국인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제품이 많다.

지상 1층에는 ‘크리스마스 악몽’ ‘유령신부’ ‘토이 스토리’ ‘알라딘’ 등 유명 애니메이션의 피겨와 포스터, 기념품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에 하나 밖에 없다는 인간 크기의 ‘배트맨’ ‘다스베이더’ 같은 피겨가 있다. 2층에는 살아있는 듯한 입체적인 묘사로 유명한 미국 ‘맥팔렌’ 사의 피겨들과 12인치(30.5cm) 피겨 업계에서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는 홍콩산 피겨들이 있다. ‘스타워즈’ ‘에일리언’ ‘신 시티’ ‘반지의 제왕’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비롯해 스타 워스의 광선검, ‘툼 레이더’의 쌍권총을 본뜬 소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곳 상품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나 피겨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싸게 여겨진다. 홍콩 ‘핫 토이’에서 만든 12인치 제품은 10만∼20만 원 수준이다.

비싼 가격에 팔리는 피겨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이것들은 마니아들이 수집하고 싶은 0순위의 제품들로 1000만 원에 이르는 것도 있다.

블리스터에는 현지인은 물론 미국 홍콩 대만 등에서 온 젊은 관광객도 많았다. 점장 가토 에이지 씨는 “블리스터의 시부야 진출은 피겨가 오타쿠뿐 아니라 대중적인 취미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며 “주말에는 피겨 컬렉터뿐 아니라 연인 가족 등 다양한 손님들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 관련 업무에 종사한다는 세련된 검정 양복 차림의 30대 회사원은 “일본에서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마이너’ 문화가 아니다”며 “피겨는 매우 비싸기 때문에 아이들이 취미로 즐기기 어려우며 이런 점에서 성인들의 취미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의식한 듯 피겨가 성인의 건전한 취미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블리스터가 있는 시부야는 전통과 최첨단 문화, 일본과 외국 문화 등이 공존하고 있으며 패션의 거리이자 일본 유행의 발신지다. 이 거리에 자리잡은 블리스터는 피겨가 일본에서 대중문화 코드로 정착할 수 있느냐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도쿄=장혁진 통신원 escapegoat@naver.com

● 장혁진 씨는

1971년 생으로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과대 경영학과와 일본 게이오(慶應)대 일본어과를 수료했으며, 간토가쿠인(關東學院)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컨설팅 기업 ‘비즈니스 컨설턴트’에서 근무하다 2003년부터 일본 최대의 뮤지컬 회사인 극단 ‘시키(四季)’에서 아시아 담당 총괄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