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병한 지 올해로 25년째.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근호(15일자)에서 초기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말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을 정도로 금기시됐던 에이즈가 지난 25년 동안 미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분석했다.
보수적이었던 레이건 대통령은 에이즈가 발병한 1981년부터 1만2000명 이상이 사망한 1985년까지 4년 동안 공식 석상에서 에이즈를 언급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가 1981∼82년에 게재한 에이즈 기사는 10건도 안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성애자 감염 사례가 나타난 1982년 2월에야 ‘동성애자에게 치명적인 신종 질병이 여성과 이성애자에게도 발병하다’라는 제목으로 처음 보도했다. 에이즈 환자들은 직장과 학교에서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혈우병 치료 과정에서 에이즈에 걸린 뒤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던 한 중학생은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뉴스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결정적인 전기는 1985년 여름에 찾아왔다. 미국에서 남성성을 상징하던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게이라는 점과 함께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미국인들은 에이즈를 처음으로 ‘우리의 문제’로 인식했다.
여기에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카메라 앞에서 친구인 허드슨의 손을 잡아 준 것은 ‘에이즈가 일상적인 접촉에 의해 전염될 수 있다’는 당시의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6년 뒤 농구 스타 매직 존슨의 에이즈 감염 사실 고백도 에이즈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각을 바로잡는 데 기여했다. 존슨은 이후 에이즈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에이즈는 1985년에야 TV 드라마에 처음 등장했다. 영화는 TV보다 더 늦었다. 1990년에 처음으로 ‘오랜 동료’라는 제목의 에이즈를 소재로 한 영화가 등장했다. 1993년 에이즈 감염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필라델피아’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톰 행크스는 “우리는 너무 늦었다”고 고백했다.
혁신적인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이제 미국에서 에이즈는 ‘사망 선고’가 아닌 ‘만성 질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91년부터 본격화된 ‘빨간 리본’ 캠페인을 통해 에이즈에 대한 인식, 나아가 동성애자에 대한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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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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