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서지학(書誌學)의 권위자인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65·사진) 도야마(富山)대 교수는 그 성과물인 ‘일본 현존 조선본 연구’ 1권을 지난달 말 발간했다.
편찬 작업에만 8년이 걸린 1권 ‘집부(集部)’는 조선과 고려시대의 개인 문집 1만 권(3000여 종)의 정보만 우선 추려내 정리한 것이다. 나머지 4만권에 대한 자료는 앞으로 7, 8년을 더 들여 3, 4권의 책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그가 집대성한 자료에는 현재 한국에 없거나 일부 내용이 소실된 고서 수백 권의 소재와 보관 상태도 상세히 기록돼 있어 조선 문화 연구의 귀중한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안평대군이 송나라 왕안석의 글을 모아 펴낸 ‘비해당선반산정화(匪懈堂選半山精華)’ 6권 2책, 조선 전기 문신 강희맹(姜希孟)의 ‘사숙재집(私淑齋集)’ 17권 4책,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金麟厚)의 ‘하서선생집(河西先生集)’ 원각본(原刻本) 13권 13책 등이 대표적인 사례.
후지모토 교수가 정리한 자료에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실상 약탈된 책들에 대한 정보도 있어 우리 정부가 반환을 추진하게 된다면 근거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후지모토 교수는 일본의 국회도서관과 주요 대학 도서관을 빠짐없이 뒤졌고 고려와 조선의 고서가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지방의 작은 도서관이나 개인 서고까지 마다 않고 찾아다녔다.
일본의 개화기에 고서 중 일부가 흘러간 영국 대영박물관과 대만 고궁박물관도 찾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거나 내용이 복잡한 책은 단 한 권의 서지 정보를 메모하는 데도 2, 3일이 걸렸다. 35년이라는 긴 세월을 들이고도 5∼10%는 아직 자료 정리를 하지 못한 이유다.
도서관의 목록에 조선의 고서가 중국의 고서로 분류돼 있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점도 바쁜 발길을 붙잡았다. 후지모토 교수는 이로 인한 자료 누락을 막기 위해 직접 서고에 들어가 고서를 한 권 한 권 확인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작업이라 중도에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하지 않을 일”이라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1967년부터 3년간 서울대 등에서 유학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한국의 지인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그에게 힘이 됐다.
후지모토 교수는 “이번 책이 일본의 정신문화를 연구하는 데도 기여하기를 바란다”면서 “일본은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에서 많은 문물을 전수 받아 그 정신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야마=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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