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성사 과정=한국과 북한을 각각 지지하는 두 단체는 결성 이래 동포사회를 양분하며 줄곧 대립해 왔다. 어떤 의미에서는 남북 대립 이상이었다.
일본 사회 안에서 민족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에 대한 노선도 상반됐다.
민단은 지방자치단체에의 참정권 획득을 목표로 하는 등 우리 동포들이 정당한 권리를 갖고 일본 속에서 살아가는 데 중점을 뒀다.
반면 북한의 재외공관 성격이 강한 총련은 독자적인 민족교육 등을 통한 정체성 유지를 강조해 왔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뒤 두 단체 간에는 몇 차례 간부급 협의가 열렸지만 대표 간의 만남은 좀처럼 성사되지 않았다. 50년에 걸친 대립으로 인한 벽은 그만큼 높았다.
급진전이 이뤄진 것은 2월 민단의 하병옥(河丙鈺) 신임 단장이 선출되면서부터.
하 단장은 취임회견에서 “재일동포사회의 여러 단체 간 화합을 추진하겠다”면서 “필요하다면 총련을 방문해 대립 해소와 화합 추진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민단은 하 단장의 이런 방침에 따라 4월 말 총련 등이 참여하는 상설기구인 ‘6·15 공동선언실천 일본지역위원회’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위원회 측에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 위원회에는 민단이 적성단체로 규정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도 참가하고 있어 민단은 그동안 참가하지 않았다. 한통련은 중앙정보부의 김대중(金大中) 씨 납치사건 당시 구명운동을 주도했던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의 후신이다.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 모두 양 단체의 화해를 적극 권하고 있기 때문에 두 단체 간의 협력은 빠른 속도로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6·15 남북정상회담 기념행사 공동 참여와 8·15 행사 공동 개최를 비롯한 상징적인 협력 외에 재일동포 지위 향상 등 실질적 문제에 대해서도 공조가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근본이념 문제에서 두 단체의 골이 워낙 깊어 협력관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부분은 민단이 앞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될지 여부다.
일본 정부가 최근 총련의 본부건물 등에 대해 적용하던 면세 혜택을 없애기로 하고 부정자금과 송금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어 총련은 북한을 지원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납치문제가 불거진 이후 재일동포들의 이탈도 심각하다. 총련의 회원은 공식적으로는 23만 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각에서는 10만 명도 안 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부 일본 언론은 “민단 자금이 총련을 통해 북한에 흘러들어가 대규모 개발 등 경제 재건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납치와 핵문제에서 한일 양국의 연대가 흔들릴 우려를 제기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관방장관은 민단과 총련의 화해에 대한 직접적인 논평을 피하면서도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을 확실히 집행할 것”이라며 북한과 총련에 대한 강경방침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재일본대한민국민단:
1946년 설립된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이 전신. 한국을 지지한다. 명칭에서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바뀌고 ‘거류’를 떼어내 1994년 현재의 이름이 됐다. 한국계를 중심으로 회원이 50만 명 정도. 중앙본부를 정점으로 지방 행정단위(도도부현·都道府縣)마다 지방본부를 두고 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재일 조선인 조직으로서 1955년에 결성. 북한계를 중심으로 결성됐으며 회원이 약 23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의 중앙본부를 정점으로 광역 지방 행정단위마다 지방본부가 있고 상공연합회, 청년동맹, 체육연합회 등 약 20개의 산하단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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