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서 ‘버려진’ 호주인 다른 팀이 구조

  • 입력 2006년 5월 30일 03시 05분


《해발 8000m를 훌쩍 넘기는 히말라야 봉우리들.

산소 부족으로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이곳에서 가늘게 숨을 쉬고 있는 혼수상태의 사람을 만난다면?

당신은 그를 들쳐 업고 사선을 넘을 것인가, ‘가능성 없는 생명’을 포기하고 등반을 완수할 것인가.》

최근 에베레스트 등반 과정에서 ‘죽었다 살아난’ 호주의 저명 산악인 때문에 고산 등반의 윤리가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링컨 홀(50·사진) 씨는 25일 셰르파와 함께 정상에 올랐으나 하산 과정에서 고산병에 걸려 쓰러졌다. 그를 안내하던 셰르파는 홀 씨가 죽었다고 판단하고 정상 아래 해발 8687m 지점에 버려둔 채 하산했다. 홀 씨는 뇌수종으로 사망했다고 보고됐다.

다음 날 미국 산악인 댄 마주어 씨가 이끄는 다른 등반대가 정상에 오르다 가부좌를 튼 채 숨을 쉬고 있는 홀 씨를 발견했다.

홀 씨는 “이런 곳에서 나를 보고 많이 놀랐을 것”이라고 농담까지 했다. 고산병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마주어 씨 일행은 홀 씨에게 산소를 나눠 주고 따뜻한 차를 마시게 한 뒤 구조대에 지원을 요청해 산 아래로 옮겼다.

앞서 이달 초 홀로 정상에 도전하다 산소 부족으로 쓰러진 영국 산악인 데이비드 샤프 씨는 약 8500m 지점에서 다른 산악인 40여 명이 그를 지나쳐 버리는 바람에 사망했다.

그러나 샤프 씨가 당시 다른 등반가의 도움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됐고 고산에서의 등반윤리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샤프 씨를 그냥 지나쳤던 뉴질랜드 등반가 마크 잉글리스 씨는 한 뉴질랜드 TV와의 인터뷰에서 “해발 8500m 지점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혼자 살아남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가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무전을 쳤을 때 한 동료 산악인은 ‘저 젊은 영국인이 쓰러진 지 벌써 몇 시간 흘렀을 거야. 산소도 없이 말이지. 죽은 거나 다름없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얘기를 듣고 1953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정말 중요한 것은 정복이 아니라 생명인데 요즘 산악인들은 뭐가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며 분을 토했다고 뉴질랜드 일간 오타고 데일리 타임스가 전했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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