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중에서 이처럼 기상천외한 단어의 영어 철자를 정확히 외우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요즘 미국에서는 초중학생들이 까다로운 단어의 스펠링 암기 능력을 겨루는 대회가 인기를 끌고 있다.
1일 미국 워싱턴 그랜드하이엇호텔에서 열린 79회 ‘스펠링 비(Spelling Bee)’ 결승전. 열심히 일하는 벌의 형상에서 이름을 따온 이 대회는 4∼8학년 학생에게 참가자격을 준다.
수십만 명이 참가한 예선을 통과하고 결승에 진출한 13명의 소년 소녀가 마이크 앞에 차례로 섰다. 이들은 심판관이 낸 기기묘묘한 단어의 철자를 맞히느라 진땀을 흘렸다.
“h-e-c-h-s-h-e-r.”
텍사스 주에서 온 사린 훅스(13) 양은 ‘랍비의 인가(헥셔)’에 해당하는 철자를 댔다. ‘발음을 다시 해 달라’ ‘어원이 뭐냐’ ‘다른 사전적 정의는 없느냐’는 질문을 2, 3분간 해 가며 끙끙대다가 입을 뗀 것이다.
결과는 탈락. “‘-sher’가 아니라 ‘-scher’가 맞다”는 정답이 공개됐다. 훅스 양은 무대 옆에서 지켜보던 부모님의 품에 안겼고, 1000여 명의 청중은 큰 박수로 탈락자를 격려했다.
찰리 앨리거(14) 군에겐 ‘조코소(giocoso·우스꽝스럽게)’가 출제됐다. 고민 끝에 ‘j-o-c-o-s-o’라는 답을 댔다가 탈락 판정을 받았다.
이번 대회는 공중파 방송인 ABC가 사상 처음으로, 그것도 황금시간대(오후 8∼10시)를 할애해 중계했다. 대회 도중 주최 측이 돌연 사과문을 냈다. ‘헥셔’의 철자는 공지된 정답이 아니라 훅스 양의 답이 옳다는 것이다. 출제자가 원전(原典)인 ‘웹스터 신 국제사전’에서 옮겨 적는 과정 중 실수했다고 한다.
눈길을 끈 것은 결승 진출자 13명 중 인도계와 중국계가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는 점. 최근 7년 동안 인도계는 매년 열리는 대회에서 모두 5차례 우승했고 지난해엔 1∼3위를 휩쓸었다.
딸을 응원하기 위해 방청석에 있던 중국계 의학박사 장타오(張濤) 씨는 ‘스펠링 비’ 예찬론을 폈다. 그는 “지적 자극을 받은 딸이 언어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은 물론 복잡한 설명서를 읽는 눈빛까지 달라졌다”며 “다만 일상 대화에서 불필요하게 어려운 말을 섞어 쓰는 ‘부작용’이 생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회에서는 ‘공통 기어(어시프라셔·ursprache)’를 맞힌 13세 여학생이 우승해 약 2000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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