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정책실패 책임을 왜 공무원에 돌리나”

  • 입력 2006년 6월 5일 03시 00분


“최근 일각에서 공무원 조직을 비판하는 것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장관이 아닌, 직원들에게 돌리려는 시도다. 이런 책략은 공무원 조직이 반격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비겁한 짓이다.”

영국 고위직 공무원들의 노동조합인 일반공무원조합(FDA)의 조너선 봄 사무총장이 2일 성명을 내고 노동당 정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성명은 또 “공무원들은 이렇게 부당하게 비방당하는 것에 신물이 나 있다”며 “이런 비판은 정부 부처 전체 업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봄 총장은 나아가 TV 인터뷰에서 “일부 장관은 게으르고 무능력하다”고까지 비판했다. 무능력한 장관들이 각종 정책실패의 책임을 애꿎은 공무원들에게 돌려 희생양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1919년 설립된 FDA는 각 부처의 정책보좌관과 감독관, 변호사, 외교관 등 고위 행정관료와 공공분야 전문직 1만6000명으로 구성된 공무원 노조. 그다지 투쟁적인 노조는 아니다.

FDA는 존 메이저 총리의 보수당 정부(1990∼97년)가 집권 말기로 접어들 당시에도 정부를 비판한 바 있다. 그래서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이제 토니 블레어 정부도 (메이저 정부 말기와 같은) 유감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FDA가 이처럼 이례적으로 정부 비판에 나선 직접적 계기는 존 리드 내무장관이 지난주 내무부의 잇단 실책에 대해 “정확한 사실과 통계를 생산할 능력이 없는 관료들이 내무부를 이끌고 있다”고 비판한 데 따른 것.

FDA의 비판 강도를 보면 그동안 블레어 정부가 보인 정책 혼선과 책임 떠넘기기 행태에 대한 공무원 사회 전반의 뿌리 깊은 실망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게 영국 언론들의 해석이다. 더욱이 잇단 행정 실책과 스캔들로 악재가 겹치면서 노동당 내부에서조차 블레어 총리의 조기 퇴임을 주장하는 여론이 거세지는 등 ‘집권 말기 증후군’을 보이는 상황이어서 그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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