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고분자 생물리학자 쿠르트 뷔트리히(68) 스위스연방공과대 교수는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너무 성급하게 성과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뷔트리히 교수는 학문적 업적은 물론이고 활발한 사회참여로도 국제사회에서 명망이 높다.
그는 “황우석 박사의 연구 조작은 세계 과학계에 큰 충격을 줬다”며 “황 박사는 노벨상 수상을 바라는 정부와 여론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잘못된 방법을 택했다”고 진단했다.
뷔트리히 박사는 이어 “한국 과학계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자 한 명이 환상적인 연구 결과를 낸다고 바로 다음 해에 노벨상을 수상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고 따금하게 비판했다.
그는 1980년대 초 단백질의 3차원 입체구조를 핵자기공명(NMR) 분광법으로 결정하는 방법을 개발한 뒤 20년 만에 노벨상을 받은 자신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 방법으로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 단백질의 구조를 밝혀냈으며 그가 개발한 단백질 분석 기술은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 등 신약 개발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학문적 성과가 인정을 받고 실생활에 이어지기까지는 무한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며 국민들은 이런 학문적 분위기를 인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학기부터 매 학기 2주간 연세대 언더우드국제학부(UIC) 석좌교수로 한국의 강단에 서게 된 그는 지난달 22일 입국한 뒤 인터뷰 요청을 몇 차례나 고사하다 떠나기 이틀 전인 1일에야 인터뷰에 응했다.
뷔트리히 박사는 “한국이 껍질이 아닌 내실을 채우며 진정으로 모든 분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정부의 꾸준한 투자와 지원 외에 지름길은 없다”고 단언했다.
또 “대학원생 중에 영어 실력이 부족한 경우를 아주 많이 봤다”며 “언어장벽은 과학 분야는 물론이고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치명적인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뷔트리히 박사는 “호기심은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열 살 먹은 어린이가 밤 12시까지 사교육에 시달리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며 “한국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시달려 스스로 호기심을 개발할 시간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뷔트리히 박사는 “황 박사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좋은 과학자들이 많이 있다”며 “다음 학기에 다시 오면 한국 과학자들과 새로운 연구를 시도해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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