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꾸찌터널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놀라게 된다. 베트콩이 미군에 대항하기 위해 총연장 200km에 이르는 벌집 같은 지하요새를 손으로 뚫었다. 사람의 몸이 겨우 빠져나갈 만한 터널 속에서는 ‘폐소(閉所)공포’에 떨게 된다. 베트콩은 이 캄캄하고 비좁은 지하에 무기고, 침실, 부엌을 갖춘 요새를 구축했다. 그렇게 20년을 버티어 1975년 마침내 전쟁에서 이긴다.
▷베트남인 150만여 명, 미군 6만여 명이 숨진 전쟁이었다. 미군이 뿌린 고엽제와 제초제 등 화학무기는 자녀와 손자 대에까지 재앙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베트남은 오늘날 미국과 손잡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1995년에 수교(修交)를 마쳤고 지난해에는 판반카이 총리가 워싱턴에 가서 정상회담을 했다. 대미 수출이 한 해 60억 달러를 넘고, 전시 실종 미군의 유해 수색을 도와주겠다는 조건으로 최혜국(最惠國) 대우를 요구한다.
▷군사협력 파트너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양국의 계산이 현대판 ‘오월동주(吳越同舟)’로 나아가고 있다. 공교롭게도 전쟁 막바지의 미국 국방장관이던 도널드 럼즈펠드가 30년이 흐른 지금 다시 미국 국방장관이 되어, 베트남의 국방장관과 회담을 하고 “군사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한다. 참으로 어지러운 이덕보원(以德報怨)이다. 원한을 덕으로 갚는 것은 싱거운 자비심 때문이 아니다. 참으로 현실적이고 불가피한 실리의 선택이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국제관계 아닌가.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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