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이라크내 테러 총지휘… 외국인 납치살해 악명 떨쳐

  • 입력 2006년 6월 9일 03시 04분


7일 미군의 공습으로 폭살된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는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이라크를 피로 물들인 각종 테러의 주범이었다. 미국은 자르카위에게 알 카에다 총책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2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행적을 추적해 왔다.

자르카위는 본래 ‘자마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 그룹)’라는 무장조직을 이끌었다. 이 조직은 이라크에서 한국인 김선일 씨를 비롯해 많은 외국인을 납치 살해하면서 악명을 떨쳤다. 그는 2004년 10월부터 자신의 조직을 ‘이라크 알 카에다’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라크 알 카에다’는 이라크 내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잔인한 저항세력이다. 수많은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했고 이라크를 내전 위기로 몰아갔던 2월 말의 시아파 사원 폭파사건에도 개입했다. 3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조직의 대부분은 이라크 수니파이며, 3000명 정도가 알제리 시리아 예멘 수단 등지에서 흘러 들어온 과격분자로 알려졌다.

자르카위의 본명은 아마드 파딜 알 나잘 알 할라일레. 자르카위란 별명은 ‘자르카 출신’이란 뜻이다. 자르카위는 1966년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동북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빈촌 자르카에서 태어났다.

17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비디오 가게 점원 생활을 하면서 동네 불량배로 지내던 자르카위는 1989년 소련 침공에 대항하는 지하드에 참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다. 자르카위는 그곳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나 친분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자르카위는 1992년 요르단에서 정부 전복 혐의로 체포돼 7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그는 무서운 두목으로 통했으나 그리 똑똑하지는 못했고 카리스마도 부족했다고 한다.

1999년 석방된 이후 그는 암만의 래디슨 SAS 호텔 폭파 기도에 개입했다가 요르단을 떠나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로 들어가 무장훈련 캠프를 차렸다.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이라크에서 발생한 주요 저항공격 후에는 어김없이 자르카위가 자신의 행동이라고 주장하는 성명이 나왔고, 미군은 그를 붙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그는 그때마다 신출귀몰하게 살아남았다. 간혹 부상설과 사망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사실이 확인된 경우는 없었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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