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이전 공산당에 철저하게 비판당했던 그의 사상이 이제는 새로운 국정이념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 정부의 정치적 전략이 깔려 있다. 안으로 사회 안정을 꾀하면서 밖으로 ‘중화시대(팍스 시니카·PaxSinica)’의 초석을 놓으려는 것이다.
▽부활=‘공자’는 중국의 새로운 화두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지난해 2월 “조화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공자의 말을 거론하며 ‘조화사회론’을 역설한 이후 중국 지도자들은 기회만 생기면 공자 어록을 들먹인다.
공자사상 연구를 위한 대학의 학과 개설이나 연구소 설립도 잇따르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은 지난해 6월 ‘유교연구중심’이란 연구소를 세웠다. 3개월 뒤 런민(人民)대는 공자사상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국학원’을 설립했다. 공자사상이 ‘국학(國學)’으로까지 격상된 셈이다. 최근까지 18개 대학이 공자 관련 연구소나 학과를 개설했다.
초등학교에서도 공자 학습이 한창이다. 논어나 사서삼경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일반인도 늘어났다.
지난해 9월 베이징(北京)에서는 200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공자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또 지방행사로 그쳐 온 ‘공자문화제’가 지난해에는 국가 차원으로 승격됐다. ‘공자표준상’도 곧 제정하기로 했다.
▽밖으로=공자 선전은 해외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2004년 11월 서울에 처음 ‘공자학원’이 설립된 이후 올해 6월까지 미국 독일 케냐 등 60여 곳으로 늘었다. 2010년까지 모두 100여 개를 세울 예정이다. 중국 교육부가 직접 관리하는 공자학원은 공자사상은 물론 중국어와 중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문화선전 기구다.
중국 정부는 이 밖에도 중국의 예술 음악 문화를 홍보할 학교 200개도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
▽목적=공자 부활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소득격차에 따라 급증한 서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려 보자는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28년간 급속한 성장을 이룩했지만 소득 하위 20%의 총액이 상위 20%의 4.6%에 불과할 정도로 소득격차가 커진 상태다.
체제 안정을 꾀해야 할 중국 지도부로서는 현상 파괴 대신 기존 질서를 중시하는 공자 사상이 반가운 존재다. 또 중화사상의 모태인 유교를 외국에 전파함으로써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형성해 보려는 속셈도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를 억압해 질서를 유지하는 강대국이 아니라 물질과 정신을 함께 지배하는 최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공자사상이 얼마나 효과적인 수단이 될지는 미지수다. 사회모순의 근본적 해결과 거리가 먼 데다 글로벌 시대에 유교가 세계인으로 하여금 중국을 우러러보게 만드는 힘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자 위상’ 정치환경따라 극과 극▼
‘몰락한 노예주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 유심론 사상가.’ ‘춘추 말기 위대한 사상가, 교육가.’
전자는 문화대혁명 때 중국에서 나온 ‘중국철학사’의 일부분이며 후자는 베이징(北京)어언대 교내의 공자상 뒷면에 새겨진 내용이다.
이처럼 공자에 대한 평가는 중국의 정치적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2300여 년간 성인으로 여겨져 온 공자가 갑자기 중국에서 비난받게 된 것은 아편전쟁(1840∼1842) 직후다. 영국의 무력에 무참히 짓밟힌 조국의 낙후된 원인을 유교에서 찾았다.
1919년 5·4운동 때는 ‘도둑놈 공자’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유교의 예교(禮敎)질서가 중국을 식민지에 버금가는 상태로 전락시켰다고 본 것이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공존하던 시대엔 평가가 엇갈렸다. 국민당은 공자를 끌어들여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 했고, 공산당은 이를 전복하기 위해 공자를 끌어내렸다.
공자가 가장 추락한 때는 문화혁명 시기(1966∼1976년). 산둥(山東) 성 취푸(曲阜)의 대성전 안의 공자상은 홍위병에 의해 눈이 뽑히고 배에 구멍이 난 뒤 밖으로 끌려나와 박살이 났다. 공자를 좋게 봤다는 이유만으로 린뱌오(林彪)는 공자와 린뱌오를 비판하는 ‘비공비림(批孔批林)’의 광기에 밀려 몰락했다.
공자가 다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덩샤오핑(鄧小平)이 등장하고 개혁개방이 이뤄지면서부터. 1990년대 중반 중국에서 중화민족주의가 고개를 쳐들면서 공자는 서서히 부활하기 시작했고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 사회 안정이라는 시대요청과 함께 활짝 만개한 셈이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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