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소프트웨어 황제’서 ‘자선사업 황제’로

  • 입력 2006년 6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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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수천 명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2006년 세상을 변화시킨 100인’에 선정됐던 김용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지난달 하버드대에서 기자를 만났을 때 숨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연은 이랬다. 김 교수는 당시 ‘파트너인헬스(PIH)’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저개발국가들에 심각한 문제였던 내성결핵 퇴치에 진력하고 있었다. 내성결핵은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결핵으로 비싼 치료비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서 ‘내성결핵 진단’은 곧 ‘사망’을 의미했다.

그런데 게이츠 회장이 설립한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2000년 4500만 달러를 결핵퇴치 기금으로 선뜻 내놓아 새 치료법을 개발해 페루의 내성결핵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이츠 회장은 10년 넘게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갑부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핵, 말라리아, 에이즈 퇴치에 결정적인 공헌을 해 온 자선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15일 중요한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MS가 ‘본업’이고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부업’이었지만 앞으로 2년 뒤인 2008년 7월부터는 둘의 우선순위를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게이츠 회장은 이날 “MS의 성공과 더불어 나는 거대한 부(富)를 선물로 얻었다. 거대한 부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MS 설립 이후 지금까지의 30년 인생이 MS의 성장을 위해 진력해 온 것이었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위해 바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가 MS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방식도 눈길을 끈다. 2년 동안 점진적으로 일상 업무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은 MS가 본인이 없어도 연착륙할 수 있도록 준비기간을 주겠다는 배려다.

어느 분야에서건 자발적인 은퇴가 보기 드문 요즘 세태에서 그의 ‘준비된 퇴장’은 신선하기만 하다.

2008년 7월부터 우리는 ‘소프트웨어의 황제’ 빌 게이츠를 잃는 대신 ‘손이 큰 자선사업가’ 빌 게이츠를 보게 될 것 같다. 하버드대를 중퇴한 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계 최고의 부자로 올라선 그가 또 어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자선사업을 펼쳐갈지 궁금하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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