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1시경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서울역에서 장애인복지카드를 내고 무료로 받은 승차권을 승객에게 돈을 받고 팔던 박모(59) 씨가 역무원에게 붙잡혀 들어왔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쪽방에서 알게 된 장애인 이모(55) 씨에게 70만 원을 빌려 주고 담보로 받은 복지카드를 이용해 서울역의 매표창구를 돌아다니며 무임승차권을 받은 뒤 행선지가 먼 승객 6명에게 1인당 900원을 받고 되팔았다.
박 씨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피란을 가다 어머니의 손을 놓쳐 전쟁고아가 된 뒤 미국으로 입양된 미국 시민권자다.
그는 보육원에서 미군용품 납품회사 지사장의 눈에 띄어 입양돼 1952년 미국으로 떠났다. 부유한 양부모 밑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박 씨는 남캘리포니아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꿈 많은 청년이었다.
항상 모국을 그리워하던 그는 한국 유학생의 권유로 1975년 귀국해 유명 영어학원의 강사가 됐다. 원어민 강사로 명성을 날리며 큰돈을 벌어 강남의 대형 아파트를 구입할 때만 해도 모국은 그에게 ‘은혜의 땅’이었다.
그러나 이후 시련이 이어졌다. 1980년 참기름공장을 함께 하자는 학원 제자에게 속아 가진 돈 전부를 고스란히 날렸다. 이후 통·번역, 자동차 판매 등 닥치는 대로 일하다 1996년 한국 여성과 결혼해 아들을 낳으면서 안정을 찾았지만 결혼 2년 뒤 뇌중풍에 걸렸다.
오른팔이 마비되고 말도 어눌해지면서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픈 남편을 못마땅해하던 부인은 바람을 피우다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지금 박 씨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월세 20만 원짜리 쪽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16일 오전 훈방 조치된 그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한 평짜리 ‘쪽방’으로 향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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