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하오 베이징]누가 25세 엘리트를 죽였나

  • 입력 2006년 6월 20일 03시 01분


숨진 후신위 연구원의 여자친구 장바오커 씨(앞)가 인터넷에 올린 사진. 친구 결혼식에 같이 가서 찍은 것이다. 장 씨는 그를 추모하는 편지도 사진과 함께 올렸다.
숨진 후신위 연구원의 여자친구 장바오커 씨(앞)가 인터넷에 올린 사진. 친구 결혼식에 같이 가서 찍은 것이다. 장 씨는 그를 추모하는 편지도 사진과 함께 올렸다.
《오전 2시… 아직 일은 남았다

최고 회사에서 앞서 가려면 이 정도 야근은 감수해야지

하지만 어지럽다… 쉬고 싶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전도양양하던 20대 연구원의 죽음이 중국인을 울리며 ‘과로사’란 화두(話頭)를 중국 사회에 던졌다.

과로 때문에 그가 숨졌을 가능성도 있어 누리꾼들은 그가 숨진 지 3주가 지난 지금도 애도와 대책을 촉구하는 글을 매일 수천 건씩 올리고 있다. 화이트칼라 근로자의 과도한 심야근무를 법으로 규제해 달라는 요청이다.

▽돌연한 사망=중국 소프트웨어 업계 강자 화웨이(華爲)기술유한공사의 후신위(胡新宇·25) 연구원이 몸의 이상 징후를 발견한 것은 4월 28일.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로 알고 며칠간 약을 먹었지만 열이 계속 오르자 5월 2일 선전(深(수,천))의 베이징(北京)대 병원에 입원했다. 일주일 뒤에 나온 검진 결과는 뇌염. 바로 치료에 들어갔지만 14일 혼수상태에 빠졌고, 2주간 사경을 헤매다 28일에 숨지고 말았다.

후 연구원은 중국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쓰촨(四川)대 전자정보학과와 청두(成都)전자과기대 대학원을 졸업한 수재. 지난해 입사해 2차례 근무평가에서 상위 5%에 드는 ‘A’를 연거푸 받았다.

입사 후 그는 야근을 밥 먹듯 했다.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였고 출퇴근 시간이 아까워 회사 근처로 셋방을 옮겼다. 3월 말 회사의 ‘특명’을 받은 뒤로는 오전 2, 3시까지 일한 뒤 사무실에서 잤다. 오전 8시가 되면 다시 일어나 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과로사 논란=의사들은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담당의사는 중국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숨진 것은 뇌염을 일으킨 병원체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다만 과로가 병을 유발한 먼 원인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누리꾼들은 과로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IT업계에서 야근이 일상화된 지 오래고, 특히 1988년 설립된 화웨이가 최근 소프트웨어 영업수익 1위를 기록하게 된 것은 ‘이리(狼)문화’, 즉 치열한 사내외 경쟁 때문에 사원들이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 분위기 덕분이라고 누리꾼들은 지적했다.

▽철야 규제=화웨이는 최근 오후 10시 이후에 근무할 때는 반드시 상급자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을 바꿨다. 또 근무를 이유로 회사에서 자는 것도 금지했다.

또 회사는 유족에게 12만∼15만 위안(약 1800만 원)을 보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후 연구원의 사망이 과로사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의 연관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IT 기업들도 후 연구원의 사망을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야근제도를 개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누리꾼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중국 IT업계에서 ‘근로와 휴식이 적절히 배합된 인간적 삶’이 당장 보장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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