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월드컵 열기를 측정하기 위해 구글 검색창에 영어로 ‘월드컵(world cup)’을 쳤더니 나온 검색 결과 건수였다.
‘4억8000만 건’이라는 구글 검색 건수가 보여주듯 요즘 전 세계는 월드컵 열기에 휩싸여 있다. 월드컵은 이미 전 유럽을 장악했다. 남미와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자국 팀이 이번 독일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한 중국에서도 월드컵 열기는 뜨겁다고 한다.
그런데 월드컵은 이곳 미국에서만큼은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그야말로 월드컵 무풍지대(無風地帶)다. 그렇다고 미국 팀이 축구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 미국 팀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5위. 체코와의 첫 경기에서 0-3의 참패를 당하긴 했지만 강호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선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미국에서는 자국 팀 경기가 언제 열리는지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실제로 얼마 전 필자도 정말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미국인 기자와 점심 약속을 했다가 뒤늦게 약속 시간이 미국 팀의 경기시간과 겹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전화를 걸어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기자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미국 팀이 월드컵에 진출했나요?”
명색이 기자인 그의 관심도가 이 정도이니 일반인의 관심도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실제 언론의 관심도 그다지 높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팀의 경기 결과조차도 스포츠 면에 게재하는 데 그친다. 1면은 어림도 없다. 그래도 글로벌 도시인 뉴욕에서 발행되는 뉴욕타임스이니깐 이 정도 ‘배려’를 해 주는 편이다. 작은 지역의 신문들은 월드컵 기사를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오래 살아 온 사람들에 따르면 이번에는 그래도 ‘월드컵 열기(?)’가 뜨거운 편이라고 한다. 우선 TV에서 생중계를 하고 있다. 주말 경기는 ABC가, 주중 경기는 스포츠 전문채널인 ESPN이 맡고 있다. 경기당 월드컵 생중계 시청자도 300만 명 안팎으로 미국 기준에서 보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4년 전 월드컵 대회 때는 축구를 좋아하는 히스패닉(중남미계 이민자) 채널에서만 생중계를 해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한국 팀을 실시간으로 응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미국에서 월드컵 붐은 이민자들이 주도한다. 이민자 밀집지역인 뉴욕과 캘리포니아 주 등에서 이민자들이 고국 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미국 사회의 새로운 풍속도가 되면서 미국 언론에도 자주 소개되고 있다.
특히 미국 전체 인구에서 흑인을 추월해 최대 소수 인종으로 부상한 히스패닉의 축구 열풍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뜨겁다. 히스패닉 방송국인 유니비전이 생중계한 멕시코와 이란전은 시청자가 540만 명으로 이 방송국 역사상 최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히스패닉이 최근 조금씩 불붙기 시작한 축구 붐을 일으키는 데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또 그동안 적자였던 프로축구 리그의 경영 환경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미국 축구의 장래를 밝게 보는 한 요인이다.
그러나 야구, 미식축구, 농구 등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기존 스포츠의 아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미국 축구의 장래를 낙관하기는 여전히 힘들다. 축구 경기는 중간광고를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골이 많이 터지지 않기 때문에 미국에서 주류 스포츠로 부상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어찌됐건 미국인들의 월드컵 무관심은 필자에게는 아무리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낯선 풍경이다.
공종식 뉴욕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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