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미석]우리가 잘 모르는 스위스

  • 입력 2006년 6월 23일 03시 01분


초등학교 땐가, 그 이후인가 가물가물하지만 분명 교과서에 스위스에 대한 글이 있었다. 좁은 국토에 자원이 없어 고심한 끝에 시계산업에 눈을 돌려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인지 최소한 중년 이상의 세대에 스위스는 오랫동안 ‘시계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한 듯하다.

축구공 때문에 요즘 스위스는 새삼 우리에게 주목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스위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지식은 축구와 시계에 관한 것 말고는 요들송과 ‘맥가이버칼’, 알프스 산 정도에서 못 벗어나는 것 같다. 이 나라가 세계에서 알아주는 예술, 건축 문화의 산실이란 점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엄청난 소란의 한편에서 14∼18일 스위스에서 열린 바젤 아트페어는 바로 축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문화 강국 스위스의 면모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해마다 6월이면 인구 20만 명의 작은 도시 바젤에 전 세계의 부호들과 국제 미술시장에서 가장 잘나가는 블루칩 작가들, 쟁쟁한 미술관의 관계자들과 유수한 아트 딜러들이 총출동한다. 전 세계 유명 화랑들이 이곳에 부스를 차리고 작품을 팔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에 ‘예술의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올해 바젤을 둘러본 한 화랑 대표는 “스위스 사람들은 1년 동안 돈을 모아 그림을 사러 온다고 할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많다”며 “올해도 어김없이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작품 감상이 힘들었을 정도”라고 전했다.

바젤에는 유명 건축가들이 지은 미술관도 많다. 에른스트 바이엘러라는 화랑 주인이 세운 바이엘러재단 미술관도 이곳에 있다. 세계적 건축가인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공간에 고흐와 피카소 등 20세기 거장들의 대표작 180여 점이 소장돼 있다.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 지구촌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온다. 부러운 점은 바젤뿐 아니라 스위스 전체의 문화적 토양이 고루 비옥하다는 것.

최근 스위스 정부와 관광청은 ‘스위스 아트팀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작가 박민규 씨 등 7명의 한국 예술가를 초청했다. 이들이 돌아본 내용을 중심으로 책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예술과 디자인 강국 스위스의 문화와 산업을 소개하는 새로운 콘셉트의 프로젝트이자 고급스러운 문화 마케팅인 셈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미술평론가 김종근 씨는 여행 도중 취리히의 식당에 들어갔다가 피카소의 진품 그림이 벽에 걸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스위스는 우리가 모르는 면모를 많이 가진 나라였다”고 감탄했다.

문화예술은 운동경기처럼 쉽게 한순간에 결판이 나진 않으나 마음에 길고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한국도 스위스 방식을 벤치마킹하면서 ‘작지만 강한 나라’, ‘문화 강국’이 되는 길을 차근차근 짚어 나갔으면 싶다.

더불어 온 국민이 열광하는 스포츠 이벤트가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다른 나라를 깊이 이해하는 계기도 됐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어느 방송사에서 하듯이 토고까지 찾아가 주민들이 TV중계를 보는 모습을 소개할 필요는 없지만.

이제부터라도 넘쳐흐르는 열기를 조금씩 가라앉혀 생산적인 그 무엇으로 승화시키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스포츠를 즐기는 마음의 바탕에,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냉철한 인식과 타자에 대한 이해가 자리매김 될 때 세계 시민의 자격도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고미석 문화부 차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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