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선 학교급식 어떻게…“맛보다 위생이 먼저”

  • 입력 2006년 6월 26일 03시 12분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먼로 클라크 중학교의 급식 조리시설. 미국 학교 급식의 최우선 순위는 ‘위생’이다. 먼로 클라크 중학교 홈페이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먼로 클라크 중학교의 급식 조리시설. 미국 학교 급식의 최우선 순위는 ‘위생’이다. 먼로 클라크 중학교 홈페이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학생들이 학교 급식으로 식중독에 걸리는 후진적인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교육당국은 재료 선택에서 배송, 최종 조리에 이르기까지 급식업체가 지켜야 할 사항을 학교 급식 매뉴얼로 만들어 학생들의 건강을 해칠 소지를 원천 봉쇄한다. 학부모단체 등 지역사회의 감시가 엄격한 까닭에 급식업체들도 먹는 음식을 놓고 ‘장난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학교 급식의 최우선 덕목으로 위생을 강조하는 탓에 ‘맛’이 떨어진다는 일부 학생의 불평이 나올 정도다.》

▽미국=뉴욕 맨해튼의 ‘137초등학교’ 식당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매일 온도계의 정상적인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우선 컵에 얼음과 찬물을 가득 채운 뒤 온도계를 넣는다. 온도계 눈금이 1분 이내에 섭씨 0도(화씨 32도)에 도달해야 ‘합격 판정’을 받는다.

온도계는 이후 식당에 배달되는 식자재부터 냉장고의 온도 측정까지 요리의 전 과정에서 적정온도가 유지되는지를 점검하는 데 사용된다. 냉동식품은 반드시 섭씨 영하여야 하고, 뜨거운 음식은 60도 이상의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처럼 까다로운 점검 절차는 학교급식 매뉴얼에 따른 것. 미국 학교 급식의 안전과 위생관리는 철저히 매뉴얼에 따라 이뤄진다.

뉴욕 시 교육국에 근무하고 있는 권현주 연구관은 “미국에서 대규모 급식이 매일 이뤄지고 있는데도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급식에서 위생을 최우선시하기 때문”이라며 “‘맛’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 급식업체들이 교과서처럼 준수하는 것은 원래 우주선에서 식품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개발된 ‘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 미국 교육당국은 이 기준에 따라 급식 원재료 생산에서부터 제조, 가공, 보존, 유통단계를 거쳐 학생들이 최종적으로 식사를 하기 전까지의 과정에서 발생할 우려가 있는 위해요소를 중점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프랑스=‘식품의 위생안전은 밭이나 농장에서 시작된다.’

프랑스가 식품 위생에서 금과옥조처럼 지키는 말이다. 재료의 신선도를 강조하는 이 원칙은 원재료 상태뿐 아니라 음식이 가공, 유통, 소비되는 전 단계에 모두 적용된다.

재료나 중간 가공물의 위생을 중요시하는 것은 프랑스의 모든 식당에 적용되는 규범이다. 특히 학교와 병원, 직장의 단체급식에 사용되는 재료에는 더욱 철저하게 이 원칙이 적용된다.

우선 껍질을 벗기지 않은 야채는 주방에 들어갈 수 없다. 흙이 묻어 있다면 그 속에 균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냉동 재료의 경우 한번 해동한 재료를 다시 냉동하는 것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다. 한번 포장을 뜯었다면 재료가 남았어도 모두 버려야 한다는 얘기다.

냉장 보관이 필요한 재료들은 원산지에서부터 최종 조리 단계 직전까지 같은 온도로 보관돼야 한다. 육류는 2∼4도, 생선은 0∼3도, 야채는 8∼10도로 유지해야 하며 재료를 이동할 때는 냉장시설이 된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이 밖에도 급식업체들은 최종 단계인 주방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위생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생선용, 야채용, 육류용 도마를 따로 이용할 정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고교, 대학에 다니는 두 딸을 둔 교민 박모 씨는 “20년 넘게 프랑스에 살면서 식중독 사고가 터졌다는 뉴스를 본 적도 없고, 급식의 위생 상태를 의심해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독일=독일에서 학교 급식을 담당하는 모든 업체는 독일급식협회(DGE)에 소속돼 이 단체의 내부 관리지침을 따르는 한편 정부가 마련한 ‘학교 급식 표준규정’의 통제를 받는다. 이 규정은 급식에 사용되는 식재료의 공급과 관리법을 공급처와 보관일시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급식업체 선정과 관련된 규정엔 ‘학교당국과 업체가 계약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학부모협의회가 요구할 경우 언제든지 세부 계약 내용을 공개할 수 있으며, 계약 내용과 다른 식품 공급 사실이 발견될 경우 지체 없이 계약을 파기하고 책임을 묻도록 돼 있다.

급식업체는 학교 또는 학부모협의회의 요청이 있을 경우 세부 메뉴 안을 제출해야 하는데, 메뉴 안은 최소 6주마다 변경돼야 한다.

급식업체 종사자에 대한 관리도 엄격하다. 식재료를 다루는 모든 인력은 식품위생법에 규정된 별도의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며, 전염성 질환이 발견되는 즉시 업무에서 제외된다.

이처럼 엄격한 규정에 따라 학교 급식이 이뤄지는 탓에 종종 ‘맛이 없다’ ‘지나치게 익힌다’는 민원이 제기되지만 위생 문제가 일어나는 일은 없다.

DGE가 권고하는 1인당 급식 가격은 2.5유로(약 3000원). 옛 동독 일부 지역은 1.8유로로 한국 급식 단가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독일 학생과 학부모들은 저렴하게 제공되는 학교 급식에 대해 ‘대체로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김나지움(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클라우스(17) 군은 “학교 음식을 먹고 속이 거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집에서도 2.5유로로 학교에서 제공되는 정도의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프랑크푸르트=유윤종 특파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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