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공화당 지도부는 자신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 옹호하지만 민주당은 그렇지 못하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은 “의회는 2001년 9·11테러 당시 테러범들에게 대항한 유나이티드항공 93편 탑승객들과 마찬가지로 굳은 결의를 가지고 조국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그는 자신을 그런 애국자라고 믿고 있을까.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미국 정치의 당파적 분열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계급 전쟁(class warfare)’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놀란 매카시 프린스턴대 교수, 키스 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교수, 하워드 로젠털 뉴욕대 교수의 공저 ‘양극화된 미국(Polarized America)’이 전해 주는 교훈도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지난 100년 동안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동시에 진행됐다는 사실을 다양한 선거 데이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1880∼1898년 미국 경제의 급팽창으로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정치는 매우 지저분해졌다. 마치 오늘날처럼. 제2차 세계대전 후 중산층이 부상하자 정치인들은 초당적 협력에 주력했다. 1970년대 소득 격차가 다시 벌어지면서 정치 분열도 다시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당파주의가 몰락했다가 되살아난 것은 경제문제에 대처하는 공화당의 전략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공화당은 부유층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공화당은 부유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줬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중산층은 부를 축적한 반면 부유층은 재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부유층 과세 확대 등 경제적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제도를 지지하며 경제지형의 변화에 적응해 갔다.
그러다가 소득 격차가 다시 벌어지자 공화당은 중산층에 대한 관심을 접고 부유층에 집중하는 정책으로 돌아섰다. 상속세 폐지 등 부유층 감세가 정책 우선순위로 떠올랐다.
당파적 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이 경제문제에 있다면 최근 3번의 선거에서 종교적 색채까지 가미된 테러 척결이 주요 이슈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소수의 부유층을 위한 정책을 펴는 정당은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편을 비애국적이고 불경하다고 몰아세우는 것이다.
2004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동성애자와 테러리스트에 대항하는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 승리했다. 당선되자마자 부시 대통령은 사회보장제도 민영화라는 회심의 경제정책을 내놓았다.
민주당에 공화당을 따라서 애국심과 종교적 믿음에 호소하라고 충고하고 싶지 않다. 이렇든 저렇든 민주당은 공화당의 반격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치 분석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있다. 분석가들은 과거 양당이 초당적 협력에 나섰던 때를 그리워하며 ‘중도주의자(centrist)’ 정치인 주위로 몰려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대 미국정치에서 ‘중도주의’는 없다. 중도주의는 미국 경제가 새로운 뉴딜정책을 추진하고 중산층이 다시 부상하기 전까지는 기대할 수 없다.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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