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초 다시 찾아가 본 나가사키에는 15분의 1 크기로 데지마가 복원되어 있었다. 대한제국 말 조선과 중국이 서양에 대해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을 때 일본은 데지마를 통해 군사기술, 의학, 과학 등 서양의 선진 기술과 학문을 받아들였다. 이들 학문은 난학(蘭學)으로 화려하게 꽃피웠고 일본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나가사키를 방문할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은 대한제국 말 일본, 조선, 중국 동양 3국 사이의 경쟁과 그 결과는 어느 국가가 먼저 데지마와 같은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국가적 리더십을 갖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데지마는 오늘날 여러 국가에서 목격하는 동양 최초의 ‘경제특구’였던 것이다. 전후 한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은 데지마의 발상을 모방했다. 박정희 정부는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여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1970년대 초반 마산(馬山)수출자유지역을 만들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1980년 초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이 바로 선전(深(수,천))을 비롯한 4개 경제특구의 건설이었다. 당시 덩샤오핑은 중국 내에 경제특구를 조성하기 위해 데지마와 마산을 비롯한 수십 개 국가의 모델을 광범하게 조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식민지와 침략을 경험한 한국 및 중국의 지도자들은 자국의 영토 내에 경제발전을 위해 주권 행사를 제약하는 경제특구를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뚜렷한 국가발전의 비전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고 앞에서 끌고 가는 리더십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한국과 중국의 경제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데지마, 마산, 선전의 모델을 따라 북한은 뒤늦게 1990년대 초반 나진선봉경제특구 조성에 착수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최근 남북 경협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개성공단은 북한 지도부가 진정으로 경제특구의 건설을 통해 개혁 개방을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북한이 핵 개발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고집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구체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개성공단은 경제특구로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마산, 선전처럼 개성공단이 성공하려면 북한은 개성공단에 양질의 젊은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이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북한 지도부의 적극적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은 한국 정부와 기업에 큰 부담만 될 뿐이다.
데지마의 발상에 의해 일본의 승리로 판가름 났던 대한제국 말 동양 3국 간 경쟁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동양 3국은 1964년 도쿄 올림픽, 1988년 서울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20년의 차이를 두고 각각 올림픽을 개최했거나 개최를 준비 중이다. 따라서 베이징 올림픽 이후 경제적 측면에서 일본과 중국의 우위 경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치열해질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경제력 군사력 등 모든 면에서 꾸준히 솟아오르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북한의 덫’에 걸려 침몰하고 있는 듯한 양상이다. 대한제국 말 일본의 독보적 우위가 한반도를 요리했다면 21세기에는 한반도가 일본과 중국의 샌드위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려면 데지마와 같은 창의적 전략적 발상이 나와야 하는데 불행히도 이 정부에선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21세기형 국가발전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김영호 객원논설위원·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 youngho@sungsh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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