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의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유행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전차남’이다. 이 말은 같은 제목의 책이 나온 뒤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돼 새로운 유행어로 자리잡고 있다.
전차남 이야기는 2004년 일본의 한 남성이 인터넷 게시판에 연애로 인한 고민을 올리면서 널리 퍼졌다. 22세인 이 청년은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몰두하는 오타쿠(마니아)였다. 그는 우연히 지하철에서 취객으로부터 봉변을 당할 뻔한 여성을 구했고, 이 여성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찻잔으로 감사의 뜻을 전해 왔다.
연애 경험이 없는 이 남성은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등에 대한 고민을 인터넷 사이트 ‘2채널’의 독신자 게시판에 올렸고 누리꾼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누리꾼들은 남성을 ‘전차남’으로, 상대 여성을 ‘에르메스’로 불렀다.
전차남 스토리는 실화임이 알려지면서 2004년 10월 책으로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5년 6월 개봉된 동명 영화는 2주 만에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기록하기도 했다. 후지 TV는 드라마로 방영하기도 했고 9월에는 속편도 만들어진다. 전차남과 관련된 만화와 책 등도 잇따라 나왔다.
전차남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비정상적으로 뭔가에 몰입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오타쿠에 대한 시선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젊은 여성들은 오타쿠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고, 오타쿠임을 ‘커밍아웃’하는 남성도 늘고 있다. 예전에는 오타쿠의 얼굴은 TV에서 모자이크 처리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요즘에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오타쿠가 늘고 있다.
전차남 스토리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전차남이 수많은 누리꾼의 충고를 받아들여 사랑을 에르메스에게 전해 결실을 이룬 것이다. 누리꾼들은 전차남의 사연에 공감해 수많은 아이디어와 조언을 제공했다. 전차남 스토리는 익명의 대중이 한 사람의 사랑에 같이 기뻐하고 아파하는 ‘대중공감’의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호리에몽’은 일본 벤처 신화의 주인공으로 뉴스 메이커였던 호리에 다카후미(33) 전 라이브도어 사장의 별명. 그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곧 유행어가 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호리에몽’이라는 별명은 주머니 속에서 뭐든지 필요한 물건을 꺼내는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과 행동 패턴이 비슷하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그가 2004년 일본 프로야구 진입을 선언하면서 말한 ‘신키산뉴(新規參入)’, 2005년 후지TV 합병을 발표하면서 한 ‘소테나이(想定內·이미 예상하고 있던)’라는 말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중 인기어로 자리 잡은 것은 ‘너무 급하게 살았다’는 말. 이 말은 그가 구치소를 나온 직후 한 것이다. 그는 자택의 거실에 들어서면서 갇혀 있던 독방에 비해 “엄청 넓다”고 했고, 변호사와 함께 캔맥주로 마시면서 “아주 맛있다”고 말했는데 이것들도 곧 유행어가 됐다.
필자 생각으로는 그가 ‘소테가이(想定外·예상할 수 없었던)’라는 말을 했다면 최고의 유행어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벤처의 주역에서 범죄자로 추락한 그의 처지를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을 테니….
일본에서는 매년 연말에 ‘신어와 유행어 대상’이라는 시상식이 열린다. 1984년 시작됐으며 이곳에서 선정된 유행어 톱 10을 들여다보면 일본 사회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를 둘러싸고 ‘고이즈미 극장’ ‘자객’ 등이 유행어가 됐다. ‘조금 나쁜 아저씨’(조금 불량스러워 보이는 패션을 즐기는 중장년 남성)와 블로그도 선정됐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간 올해 일본의 사회적 이슈를 돌아보면 라이브도어의 분식 회계 사건과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발생했던 초등학생 연쇄피살사건 등 어두운 일이 많았다. 독일 월드컵에서 일본축구대표팀의 패배도 많은 이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보면 올해 하반기 일본인들이 기대하는 유행어는 “엄청 기분 좋아”일 듯하다. 이 말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기타지마 고스케 선수가 남자 100m 평영에서 금메달을 딴 뒤 인터뷰에서 한 것이다.
장혁진 통신원·극단 ‘시키’ 아시아담당 총괄 매니저 escapegoa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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